간병하다 몸져눕다.. 송해 선생의 경우
[김용의 헬스앤]
“요양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가던 길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고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유족들이 적지 않다. 요양병원·시설에서 입원 중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면회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하기 힘든 상황이다. 유리벽 사이로 얼굴만 보다가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40여일 전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면회하지 못한 자녀에겐 후회가 남는다. “이게 사는 건지... 지척에 어머니를 두고 돌아가셨다는 병원 연락을 받고 갔으니...” 이 유족은 효자로 소문났던 사람이다. 몇 년간 집에서 간병을 하다 요양병원으로 모신지 1년 남짓 됐다. 뇌졸중(뇌출혈)으로 한 쪽 몸이 불편한데다 치매까지 온 어머니 간병을 위해 작은 집까지 팔았다.
부부가 교대로 간병을 하다 아내가 몸져누워 간병인을 채용했다. 한 달에 간병비만 4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요즘은 더 올랐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간병인 구하기가 어렵다. 성실하다고 소문난 간병인을 채용하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많은 가정에서 간병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다. 노년에 접어들면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자녀에게 간병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생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제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을 찾았다. 고 송해(송복희·향년 95세) 선생과는 낙원동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전국노래자랑’의 푸근한 인상 그대로였다. 고인의 사무실(원로연예인 상록회) 앞의 선생 흉상 주위에는 20여 개가 넘는 조화가 놓여 있다. 주변 식당 주인이 보낸 조화가 가장 많다. 고인이 점심, 저녁 식사를 위해 자주 찾던 곳이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낙원동에 나와 된장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자택(강남구 도곡동)으로 퇴근했다고 한다. 고인은 다음날(8일) 아침 욕실에서 쓰러져 119 구급차가 출동했으나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100세에도 마이크를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고인은 95세까지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을 누린 셈이다. 호적 나이는 1927년생이지만 실제 나이는 97세(1925년)라고 고인이 생전에 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2018년 부인(고 석옥이·1934~2018)과 함께 폐렴으로 입원했으나 본인만 퇴원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송해 선생은 올해 유난히 수척해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월에 한 차례 입원했고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회복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았다. 긴 시간 진행되는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의 MC를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송해 선생이 우리나라 대중문화 발전에 끼친 공로도 크지만 늘 서민과 호흡을 같이 한 ‘스타’였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니며 승객들과 대화를 즐기며 방송 아이디어도 얻었다. 조금만 유명해져도 비싼 외제차를 타고 급기야 음주운전으로 사라지는 젊은 연예인들이 많은 시대에 고인의 생활방식은 남달랐다.
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건강도 챙겼다. 그래서 유명해 진 것이 이른바 ‘BMW’(Bus, Metro, Walking)다.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다리의 근력을 키웠다. 오후 4시쯤이면 낙원동 동네 목욕탕에서 온탕, 냉탕을 반복하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전국노래자랑 지방 녹화 때도 동네 목욕탕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하며 방송 준비를 했다.
고인은 비싼 헬스클럽 회원권 한 장 없이 건강수명을 다졌다. 그의 건강비결 또 한 가지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는 점이다. 노인의 고독은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낙원동에 나와 상인들과 대화를 즐겼고 지하철 안에서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부인이 별세한 후에는 주말에도 나와 실버극장(옛 허리우드극장)에서 노인들을 위해 노래 봉사를 하기도 했다.
몇 해 전 송해 선생과 ‘가장 부러운 남편감’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90세가 넘어도 집에 두둑한 생활비를 주고, 일주일에 2~3일 출장(전국노래자랑 녹화)을 가니 은퇴한 ‘삼식이’ 남편을 둔 부인들이 부러워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전해줬다. 송해 선생은 그저 웃기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95세까지 건강수명을 누렸다는 점이다. 송해 선생은 장기간 입원한 적이 없고 평생 몸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매일 반복하던 ‘BMW’와 사회활동이 고인의 건강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나이든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본인이 건강한 것이다. 간병 부담으로 자녀들의 삶이 찌들 염려도 없다.
요즘은 혈관질환이 늘어 중년의 나이에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뇌졸중(뇌출혈·뇌경색)은 회복해도 한 쪽 몸이 마비되고 말이 어눌해지는 등 후유증을 겪을 위험이 있다.
중년인 나도 벌써부터 간병 문제를 떠올린다. 나이 들어 내 자식에게 간병 부담을 지울까 두렵다. 오늘도 송해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도 ‘BMW’를 실천한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 빈다. “선생님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