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균, 누구나 꼭 제거해야만 할까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온 세균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다. 헬리코박터균은 위 점막에 기생하는 나선균으로 환자에서 분리된 균주마다 서로 다른 유전체 구조를 가진 특이한 세균집단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런 헬리코박터균이 우리나라에 비교적 높은 빈도로 분포하고 있으며, 어린이의 20%, 중년층의 70%, 노년층의 90%가 감염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4년 미국에서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과 같은 소화성 궤양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후 헬리코박터균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헬리코박터균은 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 헬리코박터균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감염되는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변이나 타액, 구토물 등을 통한 분변-경구 감염, 경구-경구 감염, 위-경구 감염이 주된 경로로 알려져 있다.
성적접촉에 의한 감염은 없으며 주로 많은 사람이 집단생활을 하거나 사회, 경제적으로 낙후된 집단일수록 감염률이 높다. 또한 헬리코박터균은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감염이 많으며 특히 어린이의 감염은 주로 이미 감염된 어른에게서 전염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는 술잔을 돌리는 습관을 비롯하여 여러 명이 수저를 이용하여 한 그릇의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고 어른이 음식을 씹어서 아기의 입에 넣어주는 일도 있어 헬리코박터균의 감염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균에 감염되고 나면 균주의 다양성과 감염된 사람들의 감수성에 따라 다양한 상부 위장관 병변이 발생한다.
헬리코박터균이 일으키는 위장관 질병에는 급성 위염, 만성 활동성 위염, 만성 위축성 위염, 비궤양성 소화 불량증,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위선암, 임파종이 대표적이다. 특히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90%이상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어 있으며, 이 세균을 제거하면 궤양의 재발률은 감소한다.
또 헬리코박터균은 위암을 일으키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헬리코박터균을 인간에 대한 1등급 발암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헬리코박터균과 위암과의 연관성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으며 특정한 헬리코박터균만이 질병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강남지부 건강증진의원 의료진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모든 사람이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어 있으면서 위궤양, 십이지장궤양이 있는 경우나 변연부 B세포 림프종을 앓는 경우라면 헬리코박터균을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며 “또한 위염이 심하거나 소화불량이 나타나는 경우에도 담당의사의 판단에 따라 선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궤양이 동반된 경우에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치료를 하지 않고 위장약을 복용하면서 궤양을 치료하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제균 치료를 하지 않은 십이지장궤양은 그 재발률이 60~100%에 달하며, 헬리코박터균이 성공적으로 제균 된 경우에는 5% 이내로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