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약, 암환자의 극심한 피로감 완화…대체 왜?
암환자의 극심한 피로감을 가짜약(위약)으로 상당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가 진행성 암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에서다.
연구의 주요 저자인 스리람 예누 박사(완화·재활치료·통합의학)는 "암 관련 피로감은 진행성 암 환자의 약 60~90%가 겪는 쇠약 증상이며, 환자에게 신체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수밖에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많은 암 환자는 신체 활동을 스스로 관리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며, 신체 활동을 통해서도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진행성 암 환자에 대한 초기 연구에서 단순히 위약을 제공했는데도 참여자의 약 56%가 상당한 피로감 완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약은 어떤 종류의 약물도 들어있지 않은 가짜 알약이다.
이에 힘입어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진행성 암 환자 90명에게 그들이 하루에 두 차례 제공받을 ‘피로 회복 알약’에는 실제 약이 들어 있지 않다고 사전에 알려줬다.
또 환자의 절반에게는 피로 회복 알약을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1주일 동안 어떤 종류의 치료도 받지 않게 했다. 즉 실제 약도 위약도 복용하지 않게 했다.
첫 주 뒤 가짜 알약을 공개적으로 받도록 무작위 할당된 환자군은 1주일 동안 어떤 종류의 치료도 받지 않는 환자군보다 피로감이 훨씬 더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때부터 두 그룹의 환자에게 모두 가짜 알약을 먹게 했다. 한 달 뒤 가짜 알약을 한 달 동안 복용한 환자들과 3주 동안 복용한 환자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두 그룹에서 모두 상당한 피로감 완화 효과를 보였다.
예누 박사는 위약 치료를 암 환자의 표준치료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추가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위약이 실제로 다른 질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가 만성 통증, 편두통 발작, 알레르기 비염, 주요 우울증, 갱년기 안면 홍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의 치료를 위해 '개방형 위약'을 사용한 종전 연구 결과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위약 효과)에 뿌리를 둔 현상이며,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라는 말을 뒷받침하는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의학계 일각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이번 연구 결과에 큰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가짜 알약을 통해 얻은 피로 완화량과 신체 활동, 심리 치료 등 표준치료에서 얻은 피로 완화량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려면 샘플을 늘려 추가 조사해야 한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연구팀은 시카고의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회의에서 발표된 연구는 동료 심사 저널에 실릴 때까지 예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