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하다 무면허 음주 오토바이에 치이면 치료비는?
[서상수의 의료&법] 보험공단의 구상액에 대한 새 판례
A씨는 오토바이를 무면허로 음주운전하다가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B씨를 치었다. 이 사건 교통사고의 책임비율은 A씨가 80%, B씨가 20%로 판정됐다. B씨의 치료비가 1000만원 정도 나왔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부담금이 600만원이고 B씨의 자기부담금은 400만원이었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B씨의 치료비 가운데 공단부담금 600만원을 우선 지급한 뒤 B씨의 불법행위 손해배상 채권을 대신해 A씨에게 구상금을 청구한다면 얼마까지 받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산정할 때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과실상계’와 손해에서 이익 부분을 빼는 ‘손익상계’ 사유가 함께 있으면 과실상계를 먼저 하고 손익상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피해자에게 치료비 중 공단부담금을 지급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법적으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이 20년 가까이 확립된 종전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었다.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사안에서 B씨가 A씨에게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200만원[(손해액 1000만 원×과실비율 80%)-치료비 손익상계 600만원]이다.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씨로부터 A씨가 부담할 손해배상금 800만원(손해액 1000만원×과실비율 80%)의 범위 내인 공단부담금 600만원 전액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손해 1000만원은 A씨가 800만원,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0 원, B씨가 200만원을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대법원은 종전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획기적인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1.3.18. 선고 2018다287935 전원합의체 판결). 변경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액을 한도로 치료비 공단부담금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만 피해자를 대신해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사안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액인 800만원의 범위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공단부담금 600만원에 대한 가해자의 과실비율 80%에 해당하는 480만원(600만원×80%)에 한해 피해자 대신 가해자로부터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손해 1000만원은 A씨에게 800만원,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120만 원(공단부담금 600만원–구상금 480만원), B씨에게 80만원으로 각 귀속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손해액 1000만원에서 손익상계로 공단부담금 600만원을 먼저 공제하고, 나머지 400만원에 대하여 과실비율 20%에 따른 과실상계를 하여 80만 원으로 책임범위가 산정된 결과이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례 변경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의 내용과 입법 취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목적과 사회보장적 성격 △불법행위가 없었을 때 보험급여 수급권자가 누릴 법적 지위와의 균형이나 이익형량 △보험급여 수급권의 성격 등을 종합해 내려진 다분히 정책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보험급여 수급권자를 두텁게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