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도 있다" 국민 76% 안락사 입법화 찬성
지난 3월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건강 악화로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2018년 5월에는 호주 생태학자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의사 조력 자살을 통해 사망했다.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신경안정제가 들어 있는 주사액의 밸브를 스스로 열어 죽음을 선택한 것.
국내에서도 품위 있는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의 조사 결과, 국민의 76.3%가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 입법화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윤 교수팀이 2021년 3~4월 19세 이상 대한민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안락사 입법화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시국 국내 한 해 사망자가 30만 명을 넘어섰는데, 2025년에는 35만 명, 2040년에는 50만 명, 2050년에는 70만 명까지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사에서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을 찬성하는 이유는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인권보호에 위배되지 않음(3.1%) 등이 있었다.
반대 이유로는 △생명 존중(44.4%) △자기결정권 침해(15.6%) △악용과 남용의 위험(13.1%) △인권보호에 위배(12.1%) △의사의 오진 위험(9.7%) △회복 가능성(5.1%) 등이 있었다.
앞서 윤 교수팀은 2008년과 2016년에도 동일한 조사를 진행했었는데, 당시에는 약 50%의 국민들이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찬성했었다. 5년 사이에 찬성률이 1.5배 증가한 것. 이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의 법제화를 논하기 전에 '광의(넓은 의미)의 웰다잉'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광의의 웰다잉이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5.3%가 동의했다. 광의의 웰다잉은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결정을 넘어 독거노인 공동 부양, 성년 후견인, 장기 기증, 유산 기부, 인생노트 작성 등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응답자의 85.9%는 광의의 웰다잉을 위한 체계와 전문성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윤 교수팀에 의하면 환자들은 △신체적 고통 △정신적 우울감 △사회·경제적 부담 △남아있는 삶의 무의미함 등으로 안락사를 원한다.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여주는 의학적 조치, 의료비 지원,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호스피스 및 사회복지 제도가 미비할 뿐만 아니라 광의의 웰다잉마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라며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광의의 웰다잉이 제도적으로 선행되지 못한다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요구가 자연스러운 흐름 없이 급격하게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생명 존중의 의미로 안락사가 논의되려면 환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존재적 고통의 해소라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웰다잉 문화 조성 및 제도화를 위한 기금과 재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국제 환경연구 보건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