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 엄마와 아기에게 놀라운 선물
[박문일의 생명여행] ⑲임산부 권리와 자연주의 출산
“관장하기 싫어요!”
“꼭 분만 전에 회음부 제모를 해야 하나요?”
“내진을 너무 자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신부들의 이러한 요구는 이제 분만실에서 거의 매일 듣는 말이 됐다. 많은 임산부들이 소위 분만 시의 3대 굴욕이라고 하는 “관장, 제모, 내진”에 대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1999년 9월, 수중 출산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수중 출산은 참으로 많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20여 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 이제는 거의 모든 임신부들과 가족들이 “분만이란 의료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당당히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남편들도 아내의 분만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됐으며, 오히려 분만실에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남편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시대가 됐다.
사실 10여년전 만해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분만실 출입문에는 “외인(外人)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분만실에서 사실 외인이란 누구일까? 임산부의 가족들일까?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의사와 간호사가 외인이다. 그동안 의사와 간호사들은 출입금지라는 딱지를 앞세워 임산부로부터 가족을 억지로 떼어놓고 자신들이 모든 분만과정에 대한 의료시술의 집행자로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의료적 관행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임산부와 가족들은 이제 너무나도 떳떳하게 자신들의, 자신들에 의한, 자신들과 아이들을 위한 출산환경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최근 이른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관심이 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선 아직 ‘자연주의 출산’과 ‘자연 분만’이란 단어를 혼동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주의 출산’이란 무엇인가. ‘자연분만’과 같은 뜻인가? 아니다. 자연분만이란 제왕절개술에 대비되는 질식분만의 개념이다. 즉, 자연분만이란 단순히 임부의 질을 통하여 아기를 분만한다는 뜻이고, 제왕절개술이란 임부의 복부를 통해 아기를 분만한다는 뜻이다. 이 두 단어는 단순히 아기가 태어나는 경로를 나타내는 단어다. ‘자연주의 출산’은 단순한 자연분만의 개념이 아니고, 출산 과정에 있어서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질식분만인 것이다.
출산의 주체는 의사가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임산부다. 가족 형성의 주체도 임산부다. 임산부의 출산은 인간 탄생의 위대한 경험이며, 향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 된다. 가족에서의 어머니 역할은 가족의 중심이 될 뿐 아니라, 가족들의 위기 극복에서도 모성 본능이 발현된다. 또한 아기에게는 어떠한가? 고치 속 어린 나비의 예를 들면, 스스로의 힘에 의하지 않고, 인공적인 힘을 빌어 나오는 나비들은 스스로 껍질을 벗는 자연적인 과정이 생략됨으로써 세상에 나온 후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도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자연주의 출산 환경이 아이들의 미래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들이 요즘 새롭게 속속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연주의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지능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무통마취 등의 의료적인 통증 관리가 없다. 라마즈분만법, 소프롤로지분만법, 명상, 아로마 등을 이용한 자연적인 진통 관리를 통하여 “진통은 아기에게 필요한 것” 더구나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할 때 그 자체로 통증이 이미 감소되는데, 이러한 분만 중 진통이 사실은 신생아의 호흡 촉진과 지능 발달에 훨씬 유리함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자료는 진통을 경험한 질식분만과 진통을 경험하지 않는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신생아들이 17세가 되었을 때 지능지수(IQ)를 조사한 결과다.
또한 진통을 경험한 산모는 진통을 겪지 않았던 산모들보다 향후 인생에서 험한 파도를 훨씬 쉽게 극복한다. 평생에 단 한번뿐인 진통 과정에서 자신의 귀중한 경험과 성취감을 가지게 되면서 “진통도 겪었는데 무슨 일을 못하랴”하는 자신감에 충만하게 한다. 이러한 자신감은 아이들을 훌륭히 키우는 데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경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의료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임산부와 태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분만 과정의 여러 가지 위험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의학은 정상적인 자연분만과정에까지도 개입하게 됐으며, 결국 현대적인 의료 기술들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스스로 출산하는 힘, 즉 분만 과정상의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모성의 힘을 되찾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 출산’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의사나 병원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의사와 병원은 여전히 필요하다. 의사는 임산부 스스로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자문 역할을 한다. 즉, 돌발적 위험에 대처하는 소방관 같은 전문가 역할이다. 임신, 출산 등 여성의 전체 생애의 전반적 건강을 계획하는 전문가로서 고위험 임신의 관리에서는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고위험 임신에서는 현대 의학이 등장해야 한다. 이 경우 출산은 의료다.
오늘도 나는 자연주의출산실에서 임산부랑 남편과 함께 웃으면서 대화한다. 내가 하는 의료적인 조치는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내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 받고, 안심하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아기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개입할 것은 별로 없다. 다만 혹시 위험한 환경이 올 때를 대비하여 옆에 있어만 주면 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질 때에 위대한 어머니의 힘이 더욱 발휘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보다 찬란하게 보장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