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심장” 임산부, 조산 예방 위해선?
[박문일의 생명여행] ⑱유산·조산 예방법과 수술
오전 진료가 끝나면 점심시간에 직원식당에 올라가는 길에 응급실을 들르는 습관이 있다. 혹시 산과(産科) 응급환자가 방문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어떤 병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산과 응급환자는 응급조치에 따라 예후에 큰 차이가 있다. 자칫하면 곧바로 유산 또는 조산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산과 영역에서 조산을 잘 일으키는 고약한 병이 있다. 임신부 본인은 물론 의사들도 모르게 진행된다. 첫 임신에서 임신 중기에 자연유산되거나 미숙아를 낳는 자궁경부무력증이 그것이다. 임부는 자궁수축이란 증상이 느껴지면 위험을 알고 병원을 방문하는데, 이 병은 발생 초기에 자궁수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즉 임신부도 모르게 발생되는 '조용한 자궁수축' 때문에 자궁경부가 서서히 열리면서 양막이 자궁경부를 지나 질로 튀어나오고 이윽고 조산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임부가 증상을 호소하지 않으니 의사는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병의 진행을 잘 알 수 없다. 따라서 첫 임신에서 발생한 자궁경부무력증에서는 조산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첫 임신에서 조산율은 약 10%이다. 첫 조산 이후 다음 임신에서의 조산 재발률은 갑절이 되며, 두 번째 임신에서도 조산이 되풀이됐다면 세 번째 임신에서의 재발률은 4배로 증가한다. 그러니 다음 임신에서의 조산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의사들이 고안해 낸 것이 자궁경부가 열리기 전에 미리 자궁경부를 단단히 묶어주는 수술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쉬로드카, 맥도날드, 또는 더블맥도날드 수술이다. 수술 시기는 자궁경부가 열리기 전인 임신 13~16주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과거에 조산 경력이 있는데도, 이러한 예방수술을 받지 않고 있다가 자궁경부가 열려 양막이 밀려 내려온 뒤에 비로소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들이다.
유행성 독감을 예로 들어보자.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가 되면 대부분은 독감예방주사를 맞는다. 그러나 예방주사를 맞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대부분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이 물론 전체가 독감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보다는 독감에 잘 걸리게 된다. 그렇다면 독감에 걸린 뒤라도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면 괜찮을까? 아니다. 그 사람들은 이제 독감을 각종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고생길로 접어든 것이다. 경우에 따라 폐렴으로 진행돼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자궁경부무력증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이 있다면, 자궁경부가 짧아지기 전에 미리 예방적 조치가 필요한지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과거 임신에서 중기 유산이나 조산을 경험했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자궁경부에 무리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들에 이미 노출되었던 경우들, 이를테면 과거 분만 시 난산으로 인한 자궁경부 손상, 여러 번의 자궁소파수술 경력, 습관성 유산 경력 등도 위험하다. 여러 자궁경부 질환으로 경부를 도려내는 원추절제술을 했거나, 자궁중격을 비롯한 자궁기형, 쌍둥이 임신 등도 살펴봐야 한다. 후천적으로 자궁근종, 선근증, 경부용종(폴립), 만성자궁경부염증 등도 원인이 된다. 최근에는 인공수정, 시험관임신 등의 보조생식시술 이후에도 조산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와 같은 원인 없이 발생하는 경우도 약 10%에 이른다.
그런데 일부 임신부들은 아직 조산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위와 같은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궁경부의 길이가 정상이면 예방 조치들을 미루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다가 경부가 짧아진 뒤 응급 상황이 되면 급하게 응급실을 방문한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모든 예방주사는 병이 발생하기 전에, 즉 건강할 때 맞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방 수술도 자궁경부 길이가 정상일 때 시행돼야 한다.
물론 수술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물로도 예방이 가능할 수 있으므로 수술 또는 비수술 치료법들에 대한 의사와의 전문적 상담이 필요하다. 만약 자궁경부가 많이 단축되고 더욱이 양막이 질 내부로 튀어나왔다면 치료목적의 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술 성공률은 임신 초기에 실시하는 조산 예방 목적 수술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양막이 질까지 튀어나오면 대부분 감염이 동반되기 때문에 수술 예후는 더욱 나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듭 강조하지만 선제적 예 방조치들이 중요하다.
조산이 발생하기 전의 여러가지 전조 증상들에 대해서도 잘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자궁경부무력증에서는 조산통을 잘 못 느끼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산통과 관련 있는 여러 증상, 즉 골반 및 하복부의 압박 증상, 생리통 같은 통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때로는 조산통이 발생하기 전에 옆구리 또는 허리에 통증이 먼저 오곤 한다. 5~10분 간격의 규칙적인 자궁 수축이 느껴진다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또 자궁 수축 전에 설사나 가벼운 복부 경련이 병행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위장관 관련 증상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질에서 출혈이 생겼다면 조산통이 아니더라도 필히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질출혈 자체가 임신 20주 전 조산율을 50% 증가시킨다. 질 분비물의 증가도 주요 증상이다. 자궁경부가 약해진다는 것은 조직의 단단함이 점차 소실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경부 조직이 단단할 때엔 없었던 분비물이 조직이 약해지면서 생긴다. 이러한 분비물은 경부가 열리고 짧아질수록 많아진다. 따라서 평소보다 많은 분비물이 흐르는 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진득진득한 콧물 같은 분비물이 흐르면 지체없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무색 분비물이 증가하면 양수의 누출도 의심해 봐야 한다. 지속적으로 맑은 물 같은 것이 흐르는 것은 양막이 파열된 증상일 수도 있으므로 이때에도 신속히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무릇 모든 병에 대한 예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잘 이해하고 지켜야 한다. 임신부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본인 심장과 태아의 심장, 즉 두 개의 심장이 자신 몸 안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한 예방법에 대해서도 두배 이상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