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쓴 사람 얼굴 못 알아보는 것도 병?
[소아크론병 명의 최연호의 통찰] ⑦얼굴을 구별하는 메커니즘
내 이마는 넓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머리 숱이 없고 남성형 대머리의 헤어라인을 갖고 있다. 그래도 대머리라고 얘기하기에는 아직 여유롭다고 할까. 굳이 변명을 더 하자면 어려서부터 이마가 넓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내가 보기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구는 나를 보며 머리가 더 빠졌다며 놀리기도 한다. 대머리가 놀림 대상은 아니지만 사람의 인상을 구분 짓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를 색다르게 정의해보자면 ‘전 국민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린 사건’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다 보니, 분명 장단점이 있었다. 감염을 예방하는 본래의 목적 외에 입냄새도 덜 나게 되고 화장품을 아끼며 표정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사실 쇼핑을 못해서 새 옷을 사지 못한 것이지만, 누구는 옷을 대충 입고 다녀도 마스크 덕분에 티가 나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겪은 가장 큰 단점은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데 나이 든 여성 한 분이 나에게 다가오며 반갑게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남이 나를 아는데 내가 그를 모를 때 잠깐이나마 괴로워진다. “저예요.” 그 분은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것을 눈치채고 마스크를 내렸다. 10여 년 동안 만나지 못한 먼 친척이었다.
“아이쿠, 제가 못 알아봐서 죄송해요.” 오랜만에 이것저것 가족들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마스크를 썼는데 어떻게 바로 저를 알아보셨어요?” 그러자 그 분이 크게 웃으며 답했다. “멀리서 봐도 바로 알겠던 데요?”
이마였을까? 얼굴의 아래 부분 반을 가렸는데도 나를 알아봤다는 것은 이마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마스크를 쓰고 있던 그 분을 못 알아봤고, 길에서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내가 인사해야 하는 사람인가를 늘 고민할 정도로 마스크를 착용한 얼굴 인식에 취약하다. 나처럼 이마가 넓거나 얼굴 상부가 특이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도 타인의 얼굴 인식에 어려움을 겪을까? 나만의 문제일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가족을 알아보고 동료를 찾아 낸다. 하물며 멀리 떨어져 있어 어렴풋이 보여도 형태만으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 따르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며, 부분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은 타고난다고 했다. 장면이나 얼굴을 지각할 때 각 부분보다는 전체에 반응한다는 의미이다. 헬름 홀츠는 경험에 기댄 추측(Educated guessing)을 통해 우리는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어떤 이미지가 무엇을 재현했는지 추론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50m도 넘는 거리에서 다가오는 지인을 알아보는 것은 어떤 대상을 지각하기 전에 뇌는 감각에서 온 정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추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했다. 100만년 전 사바나 초원 저 먼 곳으로부터 다가오는 물체가 사자인지 사슴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나는 내 후손에게 DNA를 전하지 못했을 것이니까. 대상이나 풍경, 얼굴의 표상은 여러 경로를 통해 뇌의 하측두엽에서 형성된다. 만일 이 부분이 손상되면 사람은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얼굴인식불능증(Prosopagnosia)’이라고 부른다.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다른 사람은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인가, 나만의 걱정인가, 아니면 모두가 비슷할까? 나의 뇌는 아직 괜찮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