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코로나19 사망자 1500만 명 추정” 발표 못하는 이유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산한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숫자가 2021년 말 현재 1500만 명으로 각국 정부가 공식 집계한 600만 명의 2.5배가량 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WHO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토대로 이 놀라운 추정치의 발표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수개월 동안 지연돼 왔다는 사실도 함께 보도했다.
이유는 900만 명에 이르는 추가 사망자 중 3분의 1(300만 명) 이상, 최대 400만 명이 인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모디 정부의 집계로는 인도의 사망자는 현재까지 52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WHO 추산이 발표되면 인도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배출한 국가가 될 뿐 아니라 모디 정부는 3~4배가 되는 자국민의 사망을 은폐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WHO는 코로나19의 진정한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인구통계학자, 공중보건 전문가, 통계학자, 데이터 과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을 모아 기술 자문 그룹을 만들었다.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가장 완전한 설명을 종합하기 위해 공식 보고된 국가 데이터와 다양한 기관이 추가한 새로운 통계, 코로나19로 인한 간접사망 그리고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발생한 사망까지 포함하는 통계 모델을 적용했다.
NYT는 해당 자료에 정통한 관계자 10명 이상에 대한 취재를 토대로 1년 넘게 이뤄진 그 작업의 결과물이 원래는 올해 1월 발표될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인도가 WHO의 방법론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식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것. 모디 정부는 지난 2월 건강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유엔 통계위원회에 제출한 성명에서 "인도는 그 과정이 협력적이지도 않고 적절하게 대표적이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글로벌 데이터는 전염병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또 미래에 유사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완화할 조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란 점에서 그 발표가 지연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를 초래한다. 인도의 반대로 WHO의 공식 발표가 계속 미뤄지자 기술자문그룹에 참여한 학자 중 일부는 독자적으로 이를 발표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고 NYT는 전했다.
WHO 대변인 중 한명인 암나 스메일베고비치는 이에 대해 “4월 중에 공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WHO의 사미라 아스마 데이터 분석 및 전달 담당 부국장은 데이터 공개가 “약간 지연되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이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인도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인도의 백신 연구는 전 세계 전문가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인도의 공중 보건 대응은 자신감이 지나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 1월 인도가 "큰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했다"고 자랑했고 두 달 뒤 인도 보건부장관은 “인도가 코로나19의 마지막 게임에 들어갔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 자만심은 엘리트 기관 내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관료들의 실수와 시도로 이어졌다. 지난해 4월 델타변이 파동이 들이닥치자 병원은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산소호흡기에 제공될 산소가 바닥났다. 하지만 이렇게 사망한 사람 중 상당수가 누락됐다.
인도의 과학은 팬데믹 기간 점점 더 정치화됐다. 지난 2월 인도의 코로나 사망자가 공식 수치보다 6~7배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 논문이 과학전문지《사이언스》에 발표되자 인도 보건부 차관이 비난하고 나섰다. 이어 3월 국제의학학술지 《랜싯》에 인도의 사망자를 400만 명으로 추산한 논문이 발표되자 인도 정부는 다시 해당 연구의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WHO와 함께 그 자료를 검토해온 미국 미시건대 공중보건대학원의 브래머 머커지 교수(생물통계학)는 “과학은 과학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인도의 대응을 비판했다. 그는 “엄격한 과학적 방법을 거친 대안적인 추정치가 있다면 그걸 발표하면 되지 ‘난 그걸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거부하는 건 정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도는 지난 2년 동안 세계보건기구(WHO)에 전체 사망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WHO 기술자문그룹은 인도의 28개 주 중 최소 12개 주에서 수집한 수치를 토대로 코로나19 사망자가 최소 4~5배 이상 된다고 추산했다. 추정치에 사용된 모델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미국 워싱턴대학의 존 웨이크필드 교수(생물통계학)는 “원래 공식 발표는 지난해 12월에 마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가 해당 추정치에 불만을 표해 모든 종류의 민감도 분석을 수행해 훨씬 정밀한 수치를 뽑아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핵심은 실제 발생한 모든 사망자와 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 사망자 사이의 차이인 ‘초과사망자’를 추출하는 것이었다. 일부 국가는 사망률 데이터를 면밀히 추적하여 WHO에 즉시 제공했고, 다른 국가는 부분적인 데이터만 제공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국가처럼 사망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 나라도 있었다.
아스마 WHO 부국장은 아프리카 사망자는 10명 중 9명, 전 세계 사망자는 10명 중 6명이 등록되지 않았으며, 세계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사망 데이터가 일부 또는 전혀 없는 국가에 대한 사망률 추정치를 산출하기 위해 기술자문그룹은 통계 모델을 사용해 봉쇄 조치, 질병 비율, 온도 및 인구 통계와 같은 국가별 정보를 기반으로 국가별 예측 수치를 뽑은 뒤 이를 종합했다.
인도 외에도 자료가 불확실한 인구 대국은 여럿이었다. 러시아 보건부는 2021년 말까지 코로나19 사망자가 30만 명이라고 WHO에 통보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인 러시아 통계청은 100만 명 이상의 초과 사망자가 있었다고 알려왔는데 이는 WHO의 초안에 근접했다. 러시아 정부는 그 수치에 반대했지만 데이터 공개를 지연시키려 하지는 않았다고 기술자문그룹 구성원들은 밝혔다.
팬데믹의 진원지였던 중국은 사망자 자료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특히 발병 초기에 사망률이 낮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의 공식 보고는 코로나19 사망자가 5000명 미만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대부분 국가보다 코로나19 검사 숫자를 훨씬 적은 수준으로 유지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봉쇄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 정부 산하 연구팀이 내부 데이터를 사용해 중국의 초과 사망자를 조사한 몇 안 되는 연구 중 하나는 우한시가 봉쇄됐던 두 달간 심장병과 당뇨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음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그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 병원에 도움을 청할 수 없거나 꺼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2020년 1분기 우한의 전반적 사망률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 50% 더 높다고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