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은 병일까, 아닐까?
[권순일의 헬스리서치]
비만은 체내에 지방 조직이 과다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인 비만 분류법은 체질량지수(BMI·체중(kg)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를 기준으로 하는데 BMI가 30 이상일 때 비만으로 판정한다. 비만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대사적으로는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이 발생할 수 있고, 심혈관 및 호흡기 질환, 관절 질환, 생식 관련 질환, 지방간, 담석증 등이 동반될 수 있으며, 일부 암의 발생 위험도 증가한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50대에 비만이 되면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75세와 동일한 건강 상 문제가 발생하며 한 번에 4가지 이상의 건강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비만은 꼭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이런 비만에 관해 질병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측과 본인이 의지를 갖고 식습관과 운동 등 생활방식을 개선해 해결해야 한다는 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데일리메일에 게재된 두 영국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한다.
◇비만은 병이다(캐럴 리룩스 박사·얼스터대학교 대사의학과 교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중 감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자신의 의지력 부족을 탓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많은 비만 전문가들은 부실한 생활방식보다는 비만은 실제로 생물학적 질병 특히 뇌의 질환이라고 보고 있다.
전통적인 견해는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비만 의학 전문가들은 이와는 반대로 비만이라는 병 때문에 너무 많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이미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만인 사람들에게 그것이 만성적인 질병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실패했다고 느끼지 않고, 그들의 상태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실제로 동기를 부여한다. 비만을 질병으로 정의하는 것은 또한 어떤 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환자를 탓하지 않고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더 쉽게 만든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만은 식욕과 공복감을 조절하는 신경의 오작동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신경은 의지력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시상하부 및 뇌의 다른 영역에 위치해 있다. 시상하부는 식욕을 조절하고, 호르몬을 방출하며, 체온을 조절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의지력으로는 통제를 할 수 없다.
물론 의지력으로 먹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지와는 달리 하루 종일 음식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 세포들이 먹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식욕을 조절하는 것이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이유다. 즉, 공복감은 단순히 뇌의 일부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식욕 조절을 담당하는 특정 신경을 자극하면 쥐가 게걸스럽게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신경을 차단하면 쥐가 먹는 것을 멈췄다. 이것은 식욕을 억제하는 프로오피오멜라노코트린(POMC)과 공복감을 느끼게 하는 뉴로펩타이드Y(NPY)라는 두 가지 주요 신경에 대해서 알게 한다.
이러한 신경에 기능 부전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공복감을 더 느끼게 되면서 더 먹게 되고, 체중이 증가해 당뇨병, 심장병, 암 등 여러 합병증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비만을 질병으로 간주하게 되면 이에 맞는 치료제나 치료법이 나올 수 있다.
한 가지 예로써 신경 오작동은 고도 비만 환자를 위한 비만 대사 수술(배리애트릭 수술)을 받으면 교정될 수 있다. 이런 수술은 소화기 계통을 외과적 수술로 바꿔 음식 전달을 빠르게 해 신체가 식사를 했다는 것을 더 빨리 느끼게 하고, 이런 메시지를 뇌에 전달해 더 빨리 배부르게 느끼도록 도와주며, 먹고 싶은 충동을 줄이게 된다.
비만 대사 수술 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이전에 공복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뇌신경의 활동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런 뇌 영역의 기능 부전은 왜 일어날까. 다른 여러 질병과 마찬가지로 비만도 유전적 소인의 조합이다. 이런 유전적 소인은 먹는 음식과 활동성을 포함한 건강하지 못한 환경 요인에 의해 증폭된다.
비만인 사람들 대다수(약 70%)가 과체중을 유발하는 유전적 소인을 가질 수 있다고 추정진다. 이런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들은 정크푸드(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를 더 많이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체중 감량과 관련해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보건 당국의 조언에 반대하지 않는다. 보통 10명 중 2명 정도는 비만 퇴치 식이요법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있다. 하지만 의지력과는 상관없는 뇌의 오작동으로 인한 비만은 질병의 차원에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양말과 비슷한 모양의 기구를 장에 삽입해 포만감을 자극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비만 수술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비용이 적게 들고, 덜 침습적이라는 이점이 있다.
또한 신약인 세마글루타이드는 NPY와 POMC의 활동 수준을 재조정해 공복감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식이요법, 운동과 함께 매주 이 약물 주사를 맞은 비만 환자는 체중의 15%를 줄인 반면, 가짜 주사를 맞은 환자는 3%에 그쳤다.
이처럼 현재 비만 치료를 위한 밝은 미래의 직전에 서 있다. 하지만 비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질병으로 치료하지 않는 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비만은 병이 아니다(맥스 펨버튼 박사·정신과의사, 칼럼니스트)
비만을 행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질병으로 간주하려는 의학적 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삶의 양상들을 의학의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추세의 일부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도록 강요하는 의학계 관련자들이 있다.
그러나 비만과 마찬가지로 중독이 질병이라고 주장하려는 시도는 비생산적이다.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책임감을 없애고, 중독자들과 비만인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변화를 주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행해지는 많은 심리적인 작업과는 정면충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 복용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비만한 사람들은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뚱뚱해지는 것이다. 이야말로 그들이 매일 내리는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박탈하는 것이다.
물론 행동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비만이 음식과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결과이며 이는 기저에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체중 감량을 원하는 비만인 사람들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질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고 친절하게 보살펴야 한다.
폭식장애를 가진 과체중인 사람들에게 비만에는 중요한 심리적 요소가 있다. 이들은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으로 하루 종일 뭔가를 먹는 경우가 있다. 음식을 감정적인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심리적인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로 과식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과체중을 초래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치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비만한 모든 사람들이 근본적인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음식을 먹기로 선택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한 동기나 지식 또는 의지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질병이 아니다. 질병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비만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
물론 때때로 의사는 체중 감량을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만 수술이 있다. 하지만 살을 빼려는 사람이 왜 이런 식으로 음식을 먹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적인 연구를 하지 않으면 수술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수술 후에도 근본적인 심리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20%는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을 질병으로 보면 위로가 된다. 이는 사람들이 그들이 체중을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게 하고, 체중 감량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비만이 당뇨병과 같은 여러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비만 자체가 질병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은 인체의 기본 생물 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지방은 단순히 과잉 에너지가 축적되는 것이고, 체중 증가는 총 에너지 섭취량이 총 에너지 소비량을 초과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케이브리지 의학연구위원회 연구팀이 2만여 명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일부 사람들은 과체중이 되기 쉬운 유전자를 갖고 있었지만 활동적 생활방식과 음식 섭취를 줄이면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만과 관련해 미리 결정된 것은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경우, 왜 1960년대 약 1%에 불과했던 비만 인구가 최근에는 25%까지 늘어났을까. 간단한 답은 식단에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배급제도가 끝나고 칼로리가 많은 음식이 넘쳐나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복잡한 요인이 있다. 영국 보건 당국이 1967년과 2010년에 수집된 자료를 비교한 결과, 1960년대의 사람들은 운동할 체육관이 적었고 고지방 음식을 먹었음에도 더 날씬했다. 이는 1960년의 사람들이 요즘보다 운동을 더 많이 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당시에는 10가구 중 3가구 정도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비해 요즘에는 10가구 중 7가구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1960년대의 사람들 중 75%가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 걸었지만 요즘은 약 40%에 불과하다.
또한 1967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90%가 체중 감량을 시도한 반면, 2010년에는 57%에 그쳤다. 이처럼 비만의 증가를 생활방식의 변화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이 보다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살을 빼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만이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의학적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게 된다. 이는 비만인 사람의 책임을 덜게 되고, 그것을 의사들에게 맡기는 꼴이다. 이는 비만 해결의 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