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녹지병원 사태와 영리병원 허용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영리병원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제주녹지병원에 대한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2015년 정부는 제주헬스케어타운 내에 국내 최초로 영리병원설립을 승인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제주녹지병원으로 2017년 완공하여 개원할 준비를 마쳤다. 이 병원은 경제자유구역법이 적용되는 제주도에 건립돼 외국인과 내국인을 모두 진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진보사회단체들이 제주녹지병원이 영업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우리나라의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의료민영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영업을 허가하지 말도록 정치권 및 정부에 많은 압력을 가하였고, 제주도 공론조사위원회는 제주녹지병원 인허가에 대한 도민 공론조사를 실시하였고 개원 불허 권고안을 도출했다.
결국 제주도는 제주녹지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하고 외국인 진료만 허용하는 조건부개설허가를 하였다. 이와 같은 제주도의 결정에 반발한 제주녹지병원은 개원을 미루었고 제주도는 정당한 이유 없이 3개월의 기한을 넘긴 채 개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주녹지병원에 대한 조건부개설허가를 취소했다. 병원은 이에 반발하면서 폐업신고를 하였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제주녹지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하고 외국인 진료만 허용하는 조건부개설허가에 반발한 제주녹지병원이 개원을 미룬 행위가 ‘정당한 이유 없이 3개월의 기한을 넘긴 채 개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 해당되는지 여부다. 이와 함께 ‘내국인 진료를 금하고 외국인 진료만 허용하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준 제주도의 행정처분이 적법한 행정처분인지이다. 최근 이 두개의 쟁점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제주도의 개설취소 처분에 대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개설허가에 공정력이 있는 이상 일단 허가 후 3개월 이내 의료기관을 가설해 업무를 시작해야 하지만 무단으로 업무시작을 거부한 사실을 인정하며 제주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21년 9월에 선고한 2심 재판부의 의견은 달랐다. 제주도가 제주녹지병원의 영업허가를 지연해 병원인원 134명 중 의사 9명을 포함하여 과반수인 70여명의 인원이 이탈했으며, 개설준비를 마치고 1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가하지 않는 조건부허가가 이뤄져 사업계획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영업개시까지 3개월의 짧은 시간을 주는 등 개원에 따른 구체적인 절차와 계획을 다시 수립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제주녹지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월 대법원은 제주녹지병원이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하였다. 여기서 심리불속행이란 원심에 중대한 법령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본안 심리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이다. 즉 제주도의 개설취소 처분은 위법한 행정행위라는 것이다.
한편 제주도가 내국인 진료를 금하고 외국인 진료만 허용하는 조건부개설허가를 준 것이 적법한 행정처분인지에 대한 1심 판결이 지난 5일 있었다. 1심 법원은 제주도가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라는 조건부허가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승소판결을 했다. 결국 제주녹지병원은 영리병원으로 개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할지에 대한 찬반여론은 크게 갈려 있는 상태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경제성장률이 정체됨에 따라 차세대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보건의료산업을 미래먹거리로 지정하면서 보건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 규제완화를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규제완화는 의료의 공공성과 마찰을 일으키기 쉬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영리병원 허용여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5년 제주녹지병원 사태는 어설픈 법률제정과 행정규제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제주녹지병원은 적법절차를 통해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고, 많은 자본을 투자하였지만 결국 영업을 하지 못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손해는 책임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병원설립허가를 받고 수백억의 자본을 투자한 제주녹지병원의 책임인가? 영리병원이 설립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한 국회책임인가? 아니면 내국인진료를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건부개설허가를 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인가?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로 외국인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처분의 연속성과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영리병원을 허가할지 여부는 매우 첨예한 이슈로서 보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지금의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인적 판단과 상관없이 공론화나 사회적인 합의없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법률을 만들어 설립허가를 주고, 막상 많은 자금을 들여 투자하여 병원을 설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폐업을 유도한 현재 상황은 원칙과 신뢰성을 훼손하는 사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