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치료 거부하는 서글픈 현실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병원의 암 병동에선 환자와 가족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싼 비급여 치료를 놓고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것이다. 나이가 든 부모 환자는 “그런 치료 안 받겠다”고 하고, 자식들은 “치료부터 받으시라”고 옥신각신한다. 이내 울음보가 터지고 만다. 서로가 고집하는 이유를 이심전심으로 알기 때문이다.

부모 환자는 자식들이 경제적 부담을 걱정해 비싼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암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 외에 현실적인 고민과 맞닥뜨린다. 초기나 중기 암 환자는 비싼 신약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늦게 발견한 암은 예상 밖의 치료비가 들 수 있다.

요즘은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라도 신약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계속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이 문제다. 많은 신약이 비급여이기  때문이다. 암 환자와 가족들은  돈 때문에 다시 불면의 밤을 보낸다. 이들의 86.5%가 경제적 부담으로 비급여 항암치료의 중단이나 연기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한국혈액암협회 2020년 조사).

이들은 치료비가 실제로는 가계에 큰 부담되지 않더라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불안을 경험한다. 이미 항암치료 과정에서 극심한 체력소모를 겪은 환자는 다시 치료비 걱정에 몸이 녹아내린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 환자는 자책으로 잠을 못 이룬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교수와 강단비 임상역학연구센터 교수 연구팀이 최근 국제 학술지 ‘암환자 관리 저널’(Supportive Care in Cancer)에 기고한 논문을 보면 이 같은 암 환자 가족의 절박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연구팀은 ‘재정 독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비싼 항암 치료를 받는 암환자가 겪는 재정적 문제를 항암제의 물리적 독성에 비유한 용어다.

암환자가 이러한 재정독성에 노출되는 확률은 일반인의 2.5배였다. 이들 중 26%는 의료비에 대한 걱정과 불안, 스트레스로 심리적 재정독성 상태에 놓여 있었다. 물질적·심리적 재정독성 상태에 처한 이들의 47.2%는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을 호소했다.

치료비가 당장 가계에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심리적 재정독성을 호소했다. 이들 암 생존자들의 34.6%가 인생의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심리적으로 아무 부담이 없다고 답한 암 생존자들에 비해 4.9배나 된다. 조주희 교수는 “암 진단 초기부터 재정 지출 계획에 대해 의료진과 상담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부 면역치료제는 효과가 매우 뛰어나 환자의 몸에 잘 맞으면 암 4기라도 장기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안 되는 신약은 한 달에 수백만 원이 들 수도 있다. 더 비싼 약은 1년 약값만 억대가 넘는다. 약값을 대다보면 살던 집도 팔아야 한다. 말로만 듣던 메디컬 푸어(Medical Poor)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다른 비용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가족들을 짓누른다.

이를 보다 못해 환자 스스로 비급여 항암치료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몇 년 더 살겠다고 ...” 부모 환자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비싼 신약 치료를 거부한다. 돈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앞에 치료약이 있는데...”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이번 대통령 선거 때도 비급여 치료제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비싼 신약을 건강보험으로 돌리는 것은 풀기 어려운 매듭이다. 건강보험 재정 문제, 제약사 이해관계 등이 얽혀 있어 시간만 흘러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 병동에는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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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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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 2022-03-18 00:37:12 삭제

      탈모약 때문에 이재명 찍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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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2-03-16 10:29:00 삭제

      최은순 에게 자문을 구하면 해답을 주지 않을까 ? 비싸게 청구하겠지. 이제는 더더욱 무섭거나 거칠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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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 2022-03-15 15:45:35 삭제

      탈모치료 보험적용보다 암치료 보험 적용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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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셜*** 2022-03-15 12:20:19 삭제

      제발 안락사, 존엄사 좀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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