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델타크론 현실화됐지만 ‘종이호랑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월 새로운 코로나19 변이가 발견됐다는 호들갑스러운 외신 보도가 있었다.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대 연구진이 키프로스에서 채취한 25개 검체에서 델타 변이의 특징과 오미크론의 특징이 뒤섞인 새로운 변이를 발견했다는 것. 외신은 이 키메라 같은 변이에게 ‘델타크론’이라는 이름까지 부여해 널리 보도했다.

하지만 이 검체를 조사한 전문가들로부터 실험실 오염으로 델타와 오미크론이 뒤섞인 결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델타크론은 상상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유야무야됐다. 그렇게 상상 속에만 존재할 줄 알았던 키메라가 현실에 출현했다. 두 변이의 유전적 특징을 나눠 갖은 새로운 변이가 유럽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음은 NYT의 보도 내용.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 공중보건 연구소의 스콧 응우옌 연구원은 국제인플루엔자정보공유기구(GISAID)의 코로나바이러스의 게놈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 수집된 표본에서 델타와 오미크론이 동시에 발견된 것. 드물지만 두 가지 변이에 동시에 감염됐다고 판정된 표본이었다.

응우옌 연구원은 그것이 잘못된 판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타와 오미크론 2가지 변이에 동시 감염된 것이 아니라 델타와 오미크론의 유전자가 재조합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 이와 유사한 샘플을 더 많이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코로나바이러스 온라인 포럼인 ‘코브라이니지스(cov-lineages)’에 발표했다.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매서운 동료 검토 끝에 그의 판단이 옳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에티엔 시몽-로리에르 연구원은 “우리는 바로 즉시 그가 의심하는 내용에 대한 검토를 벌였고 그 의심이 맞았다는 점이 신속히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후 시몽-로리에르 연구팀은 재조합 바이러스의 샘플을 더 많이 찾아냈고 실험실에서 재조합 바이러스 복제에 성공해 이를 8일 GISAID에 공개했다. 10일까지 발견된 델타크론의 국제 샘플은 프랑스에서 33개, 덴마크에서 8개, 독일에서 1개, 네덜란드에서 1개다. 여기에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업체 헬릭스가 미국에서 발견한 2건의 사례까지 더하면 42건이다.

델타와 오미크론이 뒤섞인 변이라고 하니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변이가 우려할 만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몽-로리에르 박사는 델타크론이 과거 델타나 오미크론이 보여준 급속한 확산 파동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개체수가 너무 적다. 지난 1월 처음 등장했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기하급수적 확산세를 보이지 않았다.

델타크론은 스파이크로 알려진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은 오미크론의 특징을, 나머지는 델타의 특징을 지녔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인체에 침투할 때 핵심요소다. 감염과 백신을 통해 생성되는 항체의 주요 표적이다. 이 스파이크 단백질이 오미크론과 거의 같기에 백신 또는 감염으로 오미크론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사람에게 델타크론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같은 이유로 델타크론은 코, 구강, 후두를 뜻하는 상기도까지는 잘 침투해도 폐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지 않는 오미크론의 특징을 공유하기에 위중증 유발률도 낮다.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한국 속담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 셈이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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