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환경 변화에 취약한 이유 (연구)
치매에는 알츠하이머병 전두엽성치매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뇌의 다른 부위에 다른 독성 단백질이 축적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치매 증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를 앓게 되면 기억력, 언어, 행동 또는 시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모든 치매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 있다. 바로 예상치 못한 상황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뇌에서 고도로 발달된 영역인 ‘다중 요구 네트워크’는 다양한 인지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매 환자들은 일반 지능과 관련된 이 네트워크의 손상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새로운 연구가 발표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MRC 인지와 뇌과학 유닛 토마스 코프 박사는 “모든 치매의 핵심에는 한 가지 중요한 증상이 있다. 상황이 갑자기 변하거나 진행될 때 대처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익숙한 환경에 머물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면 괜찮다. 하지만 가전제품이 고장나거나 낯선 장소에 가는 순간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은 치매 환자 75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뇌의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치매 중 하나를 각기 진단받은 사람들이다. 뇌의 전류에 의해 생성되는 작은 자기장을 측정하는 뇌파 촬영기가 뇌 활동을 기록하는 동안 이들은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플래닛 어스'를 사운드트랙이 없는 상태로 보았다. 뇌 스캔 도중 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일련의 ‘삐~’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일정한 패턴으로 진행됐지만 때로는 음높이가 높아지거나 음량이 달라졌다.
연구팀은 특이한 ‘삐~’ 소리가 뇌에 두 가지 반응을 유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각적 반응과 약 200밀리초 (1초의 5분의 1초) 후에 나타나는 두 번째 반응이었다. 첫 반응은 기본 청각 시스템에서 비롯한 것으로 ‘삐~’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러한 반응은 환자든 건강한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반응은 ‘삐~’ 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건강한 사람보다 치매환자의 반응이 훨씬 미미했다. 다시 말해 건강한 대조군에서는 뇌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다 잘 인식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과제 수행 중 어떤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검토한 뒤 이들 데이터를 뇌의 구조를 보여주는 MRI 스캔의 데이터와 결합했다. 그 결과 ‘다중 요구 네트워크’로 알려진 뇌 영역 손상이 두번째 반응의 감소와 관련이 있었다.
뇌의 앞뒤쪽에서 모두 발견되는 다중 요구 네트워크는 문제해결과 같은 일반 지능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이 네트워크는 고도로 진화해 인간과 영장류 등 똑똑한 동물에게만 발견되며, 우리가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다.
건강한 사람은 청각 시스템에 의해 소리를 인식하고 청각 시스템은 정보를 다중 요구 네트워크로 전달해 이를 처리하고 해석한다. 그러면 다중 네트워크는 청각시스템에 소리를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들을 것인지를 지시한다.
코프 박사는 “다중 네트워크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우리의 기본적 인식에 얼마나 관여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다중 정보망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근본적인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는 바로 우리가 사진을 보고 즉시 얼굴을 골라내고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이유인데 반해, 치매에 걸린 사람은 사진을 보고 혼란을 느끼고 중요한 것을 즉시 골라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조언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환자를 도우려면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 변화가 있을 때 이 점을 더 많이 반복하고, 뇌가 새로운 상황을 인식할 때 치매 환자에게 인내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구는 《신경과학》에 실렸다. 원제는 ‘Causal Evidence for the Multiple Demand Network in Change Detection: Auditory Mismatch Magnetoencephalography across Focal Neurodegenerative Disea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