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공룡 박테리아’ 발견
미생물의 정의를 새로 써야할 만큼 역대 최대 크기의 박테리아가 발견됐다. 최근 생물학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된 프랑스령 안틸레스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24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생물은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카리브해 맹그로브 숲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는 이를 전달 받지 못한 듯하다. 실처럼 가느다란 단일세포로 이뤄진 이 박테리아는 최대 2㎝(땅콩 크기)까지 자라며 대부분의 미생물보다 5000배나 크기 때문에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18일 그 정체가 공개된 이 박테리아는 다른 세포의 내부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다른 박테리아와 달리 우리 몸속 세포처럼 막(멤브레인)으로 둘러 싸여 있다.
이 박테리아를 관찰한 연구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의 베레나 카르발로 교수(미생물학)는 “이번 박테리아는 우리가 생각했던 세균 크기의 상한선을 10배 이상 높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UCSD)의 빅터 니제 교수(의학)는 ”환상적이고 눈이 튀어나오게 하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이 박테리아는 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다른 박테리아의 숙주로 삼는 초파리와 선충류 보다 더 크다. 일본 규슈대 가즈히로 다케모토 교수(컴퓨터생물학)는 ”박테리아와 복잡한 세포 사이의 사라진 진화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생물학자들은 생명체를 크게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두 그룹으로 분류해왔다. 원핵생물은 박테리아와 고균(古筠)과 같은 단세포 미생물을 말한다. 진핵생물은 효모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다세포 생명체를 아우른다. 원핵생물은 자유롭게 떠다니는 DNA를 가지고 있는 반면 진핵생물은 그들의 핵 안에 DNA를 품고 있다. 또 원핵생물과 달리 진핵생물은 세포의 여러 기능을 소포체로 불리는 여러 개의 세포소기관이 분할해 수행하며 분자를 이렇게 구획된 세포소기관에서 다른 세포소기관으로 옮길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박테리아는 세포막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사이의 이런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 생명체는 약 10년 전 서인도제도 프랑스령 앤틸리스에 위치한 앙티유대의 올리비에 그로스 교수(해양생물학)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 지역 늪지대의 썩어가는 맹그로브 나뭇잎의 표면에서 얇은 필라멘트처럼 자라는 이 생명체가 박테리아라는 것을 5년이 지나서 깨닫게 됐다. 그로스의 대학원생으로 이번 연구논문의 제1저자인 장 마리 볼랑이 이를 앞장서서 입증해냈다.
점균류와 남조류 같은 미생물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필라멘트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번에 관찰된 필라멘트는 하나 하나가 독립된 생명체임을 현재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해양생물학자인 볼랑은 입증해냈다.
연구진은 또한 이 박테리아가 막으로 둘러싸인 2개의 주머니를 갖고 있으며 그 중 하나에는 세포의 모든 DNA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볼랑 박사가 세포소기관이라고 부른 이 발견이야말로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을 구별하던 기준을 무너뜨리는 발견이라고 카르발로 교수는 밝혔다. 미국 세닌트루이스워싱턴대의 페트라 레빈 교수(미생물학)도 “아마도 진핵생물과 원핵생물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의 막주머니는 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아마도 이로 인해서 이 박테리아가 그토록 크게 자랄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미생물학자들은 박테리아가 세포 내부에서 분자를 확산시켜 먹고, 숨쉬고, 독소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9년 아프리카 나미비아 해안에서 발견된 양귀비 씨앗 크기의 미생물이 발견되면서 이런 통념은 깨졌다. 유황을 먹고 자라는 이 박테리아는 물과 질산염으로 이뤄진 세포내용물을 세포벽 안에 저장할 수 있었기에 그만큼 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맹그로브 박테리아는 나미비아의 박테리아처럼 전체 부피의 73%를 차지하는 거대한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과 유전자적 공통점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이 미생물계의 공룡들을 ‘티오마르가리타 마그니피카(Thiomargarita magnifica·거대한 박테리아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학명 아래 하나로 묶었다.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cm에 이르렀는데 카르발로 교수는 바람에 날리거나 파도에 휩쓸려가는 등의 훼손이 없다면 더 크게 자랄 수도 있다고 봤다.
이 박테리아의 안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DNA로 채워진 막주머니에 대한 연구도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인 ‘공동 게놈 연구소(JGI)’에서 그 DNA서열을 분석한 결과 무려 1100만 개나 되는 염기로 구성돼 있고 뚜렷이 구별되는 유전자가 1만1000개나 될 정도로 거대 게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박테리아의 게놈은 평균 400만 개의 염기와 3800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미국 모나시대의 크리스 그리닝 교수(미생물학)는 “박테리아라고 하면 작고, 단순하며, '진화되지 않은' 생명체인 '단백질 주머니'로 여기는데 이번에 발견된 박테리아는 그런 통념이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2.02.16.480423v1)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