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게’ 죽을 권리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족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염’을 하기 전 담당 직원들이 고인의 몸을 고스란히 보여준 적이 있다. 염은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것을 말한다. 순간 숙연한 마음과 함께 당황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염하는 모습을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것이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대표로 1~2명만 보면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 생명연장을 위한 여러 의료기기를 주렁주렁 달고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은 이런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담당의사는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서류까지 작성한 상태다.

환자도 의식이 있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했다.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공식 문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족에게 온갖 기기를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는 ‘존엄한 죽음’을 원한 것이다.

지난 2018년 2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의료기기로 연명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법적으로 중단하는 방식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뿌리를 내리면서 그동안 금기의 영역이었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훗날 질병으로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전의향서 작성자가 118만 명(1월 기준)을 넘었다. 65세 이상 인구의 13% 정도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등록한 것이다.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아직도 개선해야 할 여러 과제가 있다. 규모가 작은 요양병원은 연명의료결정 시행을 위한 법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의료기관 내에 윤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요양병원에서 정작 연명의료 중단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요양병원은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어도 다시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대학병원도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환자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하지 않으면 병원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 특정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 법적 소송까지 할 순 없을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있다면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은 여러 이유로 끝내 환자에게 의료기기를 달게 한다. 생명을 짧게라도 연장시켜 주는 것이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하는 자녀가 있을 수 있다. 드물지만 유산 분쟁으로 환자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환자는 생각이 똑바를 때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했다. 서류를 직접 작성해 전산망에 등록까지 했다. 가족에게 치료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품위 있는 죽음이다. 어린 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통스런 모습을 내내 기억할 것이다. 충격도 상당할 것이다. 환자와의 즐거운 추억보다는 의료기기를 달고 신음하던 ‘마지막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돌아가신 분은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묻힌다. 마지막 모습은 깨끗하고 품위가 있다. 고인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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