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왜 코로나19 팬데믹에 오판을 거듭했나?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코로나19와 과학의 시행착오
Ⅰ
환자의 증상은 평범했다. 이틀 동안 10회 이상 물 같은 설사(수양성 설사)가 지속했고 37.8~38.2도 정도의 발열과 경미한 근육통이 동반했다. 의식은 명료했고 호흡곤란, 흉통, 두근거림 같은 증상은 관찰되지 않았으며 복부도 통증과 압통이 없이 부드러웠다. 혈액검사도 백혈구 수치와 C반응단백질(감염 같은 염증이 발생하면 증가한다) 수치가 다소 증가한 것을 빼면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환자가 군복무 중인 관계로 부대에 복귀하면 검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것을 감안해서 시행한 복부CT에도 경미한 장염 외에는 뚜렷한 병변이 없었다. 경구약을 처방하고 '소화기내과 외래를 통한 통원치료'를 계획할 질환이지만 군복무 중인 관계를 고려해서 2~3일 정도 입원치료를 결정했다.
그런데 그 순간 환자의 맥박수가 분당 150회로 증가했다. 다행히 환자는 흉통, 호흡곤란, 두근거림 가운데 무엇도 호소하지 않았다. 심전도에서는 전형적인 PSVT(Paroxysmal supraventricular tachycardia)가 관찰되었다.
PSVT는 쉽게 설명하면 심장의 리듬 자체는 규칙적이지만 뛰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부정맥이다. 심방세동과 심실세동 같은 치명적인 부정맥은 아니다.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저절로 사라지지만 지속하면 혈압이 감소하는 상황으로 악화할 수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치료제에 해당하는 약물을 투여했지만 잠깐 맥박수가 정상으로 감소했다가 다시 150회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이하게도 환자는 여전히 별다른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으나 그때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심근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근염(Myocarditis)은 문자 그대로 심장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은 바이러스감염 혹은 세균감염이 먼저 발생한 뒤 나타난다. 또, 큰 문제없이 회복하는 사례가 많지만 몇몇 경우에는 심장가능이 심각하게 떨어져 단기간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같은 치료가 필요하며 드물게 사망할 위험도 있다.
이런 심근염은 초기에 선행하는 바이러스감염 혹은 세균감염의 증상이 '몸살'이나 '장염'과 유사하다. 따라서 기묘한 양상의 PSVT가 실제로는 단순한 PSVT가 아니라 심근염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리하여 즉시 심장내과의사를 호출했다. '심근염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심장내과의사는 반신반의했으나 심장초음파 결과 '심근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명되었다. 악화하면 ECMO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했고 다행히 환자는 순조롭게 회복하여 건강을 되찾았다.
Ⅱ
응급실에서는 위와 같은 상황을 자주 겪는다. 처음부터 무슨 병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례도 많지만 처음엔 해당질환을 의심하기 힘든 사례도 적지 않고 몇 번이고 치료계획을 수정한 끝에 겨우 진단과 치료에 성공할 때도 종종 있다. 그러다보니 의료인이라도 응급실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에는 '왜 처음에 이런 검사를 했냐?'고 '비난 아닌 비난'을 내뿜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뿐만 아니라 '과학'을 이용하여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일은 그런 과정을 거칠 때가 많다. 복잡한 문제, 평소에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낯선 문제를 매번 직관적으로 단번에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그런 '명쾌한 해결'은 어쩌면 '과학'이 아니라 '예언' 혹은 '주술'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19 대유행도 마찬가지다. 스페인독감 이후 거의 100년만에 경험하는 대유행이며 코로나19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신종전염병이다. 그래서 의과학자, 임상의사, 보건학자 같은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도 온갖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영업자와 대면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희생과 고통을 겪었지만 다행히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그러니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해 일일 확진자가 수만명을 상회하는 ‘대유행의 절정’을 맞이하여 지금껏 드러난 몇몇 시행착오에 지나치게 집중하기 보다는 '과학'을 신뢰하며 차분하게 연대했으면 한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