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우순경 사건... 정신병원 설립 눈돌린 정부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㉒국가 정신병원 체계 구축
1982년 경남 의령군 궁유면 경찰지서에 근무하는 순경이 주민 62명을 살해하고 수류탄을 폭발해 자신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 순경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된 참사였다.
이 사건은 4월 26일 평소 술버릇이 문제였던 우범곤 순경(27)이 술에 취한 채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실탄 그리고 수류탄을 탈취해 밤에 동네 주민62명을 살해했고, 자신도 숨진 사건이었다. 우범곤은 평소에는 순한 순경이었는데, 술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지고 행패를 부리곤 했다고 한다. 그날도 오후 근무여서 낮잠을 자고난 뒤 술에 취해 동거녀를 폭행했다. 이어 지서에서 단기사병들과 연이어 술을 마시던 중 동거녀의 동생이 항의하러 오자 무기고에 보관돼 있던 M2 카빈 두 자루, 실탄 144발, 수류탄 8개 등을 탈취해서 ‘악마의 살인극’을 펼쳤다. 당시 경찰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사상자가 늘어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전국이 들끓었다.
전문가들은 우 순경이 정신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정부는 정신병원 건립을 검토했다. 경제기획원 지역사회개발과 맹정주 과장으로부터 저녁에 2명의 교수(보건행정, 의료관리)와 필자를 같이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광화문 어느 식당에 모였다.
맹 과장은 의령 우 순경사건과 관련, 청와대로부터 전국에 정신병원 건립을 급히 기획해야 하겠다는 지시를 받았기에 자문을 요청한다고 하였다. 전국이 10개 권역이니 10개의 정신병원을 건립하도록 추가 예산을 책정하려는 안이었다. 교수들은 끄덕끄덕하였다. 맹 과장은 묵묵히 앉아있는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필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박사과정 때 여름 방학에 병원경영 현실을 알기 위해 지도 교수에게 추천을 받아 실제로 병원 경영을 익힌 경험이 있었다. 정신병동 운영 방침도 포함됐다. 이에 맹 과장에게 정신병원 경영과 관련하여 몇 가지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첫째, 정신병원을 건립하면 정신과 전문의를 확보하여야 하는데, 여러 군데 정신병원을 건립해 전문의 채용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개념이 부족해 전국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200명도 채 안 될 때였다.
둘째, 정신병동에는 남자 간호사가 있어야 하므로, 남자 간호사 양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셋째, 정신병 환자의 재원기간이 길 터이므로, 병원비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넷째,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될 정신병 환자를 위한 ‘낮병원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낮에는 치료를 받지만, 귀가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정신병원 건립을 위하여 위의 과제들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단기계획으로는 서울과 중부지역에 한 군데씩 정신병원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장기적으로는 전국 의료영역권에 각각 한 개의 정신병원을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낮병원 운영을 보편화하고, 정신심리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염두에 두도록 한다. 물론 정신과 의사와 남자 간호사 양성은 구체화해야 할 터이다.
필자의 의견에 교수들과 과장이 이의 없이 수용하였다. 경제기획원에서 예산 편성을 할 때에는 얼마든지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경제기획원에 제안한 것은 이듬해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가 맡아 진행했다. 기존의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는 노인전문병동과 함께 알코올전문병동이 문을 열었다. 전남도립뇌병원이 국립나주정신병원으로 승격돼 두 번째 국립정신병원이 탄생했고, 1987년 국립부곡정신병원이 준공해 이듬해 개원한 것을 비롯해서 의료영역별로 정신병원이 차곡차곡 건립 운영됐다. 국립정신병원들은 ‘개방병동’을 선보여 정신질환 치료에 새 장을 열었다.
우순경 사건은 정신질환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정신병원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계기가 됐지만, 정신질환의 부정적 인식이 번지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순경을 악마로 만들어 무고한 주민을 희생시킨 알코올에 대한 관용적 인식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안타깝다. 알코올은 지금도 숱한 사건 사고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데, 대중매체에서 술자리가 미화되고 술 광고가 넘치는 현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