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증후군 호소하는 의사들 늘어난다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ER’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미국 NBC에서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된 의학드라마로서 주인공 조지 클루니의 출세작이다. 응급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상황과 사연을 드라마 속에 완전히 녹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의학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다. ER은 오랜기간 방영되었기 때문에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이 많이 남은 에피소드가 한가지 있다. 이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필자의 상황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심장내과 의사인 드라마 주인공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하여 시내의 괜찮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시간이 되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응급실에 급성심근경색 환자가 왔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복귀해주세요.” 심장내과 의사의 부인은 “당신은 언제나 이렇군요”라고 말하면서 혼자 가버리고 이 의사는 삐삐(당시에는 삐삐로 연락오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를 내던지면서 에피소드가 시작됐다.
남이 보기에는 의사는 참 좋은 직업이다. 월급도 세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그렇게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사례와 같이 일과 사생활 사이에서 선을 긋기 매우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다. 우선 입원환자가 있으면 그에 대한 무한책임을 진다. 간호사는 1일 3교대로 하루에 8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자신의 근무시간에 담당하는 환자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면 그만이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다시 불려 병원에 나갈 일은 없다. 하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다. 입원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밤중이라도 나와서 환자를 봐야 한다. 주말이나 휴일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일반외과, 흉부외과, 내과와 같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과목의 경우 사생활이 매우 제한된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기간동안 휴가를 내기도 어렵고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모임을 위하여 병원에서 1시간이상 떨어진 곳에 가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최근 유행하는 단어가 바로 욜로(YOLO)이다. 욜로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일과 삶의 균형, 워라벨을 강조하며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자는 의미이다. 이 욜로는 젊은 세대가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내과, 일반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와 같이 응급환자들을 보는 과에 근무하는 의사의 삶은 욜로족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과에서 일하는 경우 근무시간도 길 수밖에 없다. 2018년 대한의사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의사 10명 중에서 7명은 주당 평균 6일을 근무하는 것으로 나왔다. 또한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의사도 10명 중 6명이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아마도 생명을 다루는 과목에서 근무를 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장시간의 근로와 업무스트레스로 인해 많은 의사들이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한다. 여기서 번아웃 증후군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및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번아웃 증후군이 지속되면 의사의 집중력이 떨어져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을 높인다.
그렇다고 이렇게 생명을 다루는 과목들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들의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다. 건강보험은 응급환자들을 다루는 과목들의 경우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의료수가를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의사들의 급여는 그렇지 않은 의사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최근 전공의 모집에 있어서 내과, 흉부외과, 일반외과와 같이 응급환자들을 많이 진료하는 과들의 지원자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지만 피부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와 같이 이런 스트레스와 멀리 떨어진 과목들의 인기가 매우 높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향이 이해가 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과로 인재들이 몰리는 경향이 과연 옳은 길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마주치는 상황은 환자들을 살린다는 사명감만으로는 위로하기 힘들 때가 많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생활에 많은 침해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윤리적 도덕적 혹은 법적인 무게로 인하여 완전히 휴식을 취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숨이 막힐 듯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일반사람들은 의사들에게 의사로서 사명감이 없다고 비난하기 일쑤다. 물론 일부 의사의 경우 의사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사명감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지금도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의사 선생님들에게 지속되는 낮은 보상이 결국에는 대한민국 의료써비스 수준의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