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눈물 닦고 북돋워주는 가족대화 팁 4가지
[조주희의 암&앎] 따뜻한 말 한마디–가족의 대화 기술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들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이다. 필자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여우의 말처럼 상대를 위한 관심과 시간, 즉 상대를 위해 애써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암이라는 병은 여러가지로 고약한 질병이다. 치료의 기간이 길고, 치료 뒤 회복의 시간이 필요해서인지, 서로를 위로하고 다정했던 가족들도 치료 기간이 몇 주가 되고 몇달 이 되어가면 서로 위안이 되는 말보다 상처 주는 말들을 쉽게 한다.
얼마전, 3살 딸아이를 둔 40세 여자 유방암 환자가 남편과의 갈등으로 너무 힘들다며 상담을 신청했다. 그녀는 동갑내기 남편의 7년간 구애 끝에 결혼해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인생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듯, 출산과 함께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다. 아이와 알콩달콩 지내며 행복한 가족을 그리던 남편과 본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하는 1년여간은 남편의 배려로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의 행동과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이도 어리고 자신도 암을 진단 받았기에 좋은 재료의 음식을 사 먹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비싸더라도 유기농 제품을 사는데, 남편은 “식비가 너무 많이 든다”라는 말을 하면서 어쩐지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그 정도 쓰는게 아깝나, 섭섭함이 쌓였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데, 자신이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아이가 몇 번 업무를 방해했더니 그녀의 탓을 하며 짜증을 냈다고 한다. 그 일로 다투기를 여러 번,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자괴감까지 들었다고 하며, 당황스럽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남편과 얘기할 때 좋게 대화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자꾸 부딪히다 보니 말만 하면 싸우게 되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우리네 부부들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좋아서 지낸 부부도 서로 맞춰가는 일이 여간 힘드랴. 물론 그렇다. 하지만 암이 주는 삶의 짐은 조금 더 버겁게 보인다. 암을 진단 받은 그녀도 그 힘든 유방암 치료과정을 거쳐 겨우 회복을 해서 지내고 있는데, 이런 스트레스 탓에 암이 재발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깊어지며 불안해지고 우울하다고 했다. 아프니까 이러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 하며 눈물을 보였다.
암은 한번의 치료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불안감, 두려움 등 정서적 어려움을 느낀다. 서로의 관계에 보이지 않는 ‘암’이라는 장벽이 더 생기면서 평소 가족관계의 문제들도 증폭되게 느껴진다. 더욱이 모두가 처음 마주하는 문제이기에 이런 감정들을 숨기려고만 하고, 특히 서로 간에 비난이나 담쌓기 등의 부정적인 대화가 이뤄지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더 힘들어진다.
필자가 오랜 시간 암환자들과 이런 문제들을 접해보니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었다. 암이 생겼을 때 진단받고 제대로 치료 받듯이, 가족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방법을 찾고 긍정적인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래는 전문가가 추천하는 암환자와 가족들이 대화를 할 때 참고하면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다.
첫째,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잠시만 신경쓰지 않아도,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가족같이 친숙한 관계에서는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서 상대방의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비난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잘 듣는 것은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 당신은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상대를 쳐다보지 않거나 팔짱을 끼고 기댄 채 듣는다면 상대는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잘 듣고 있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서 시작된다.
좀더 나가서 잘 듣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자신의 말로 다시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감정을 토로할 때는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말해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애써 알아듣는 척 할 필요 없이, 부드럽게 다시 물어봐야 한다. 물론 가능하다면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즉, 공감적 피드백까지 해주면 더 좋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나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서로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다.
둘째, 지혜롭게 요청하는 것이다. 가족은 남들에게 요구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서로에게 바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거나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것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행동이라면, 상대를 비난하기 보다 자신의 느낌을 말하면서 부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보호자가 환자에게 체력 회복을 위한 운동을 권한다면 “운동 좀 해”라는 말보다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체력이 좋아져야 하는데 계속 누워만 있으니 회복이 더딜까 봐 걱정이 돼. 당신이 일어나서 걷고 운동 좀 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요청한다고 모든 요청이 당장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염려와 걱정을 솔직하게 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잘 한 일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의 몫이니 조금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양보하고 타협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준다면 관계는 개선될 수 있다.
셋째, 긍정적인 대화를 위해 칭찬이 필요하다. 칭찬이라고 말하면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다시 말하면 서로 간의 노력을 알아주라는 것이다. 특히 가족 간에는 고마움이나 미안함, 그리고 서로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응당 당연히 여겨 간과할 때가 많다. 익숙하지 않아 더 힘들겠지만, 힘든 치료 기간 중에 진심이 담긴 ‘칭찬’, 즉 ‘알아주기’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즉시 칭찬하는 것이 좋다. “오늘 추운 데도 운동을 하고 왔구나. 정말 잘했어. 당신이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 등 근거 있는 칭찬과 나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대화의 기술과 함께 중요한 것은 ‘자기 확신’이다. 상담을 받고 여러 조언과 도움으로 서로 애쓰는 가족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상대는 계속 저렇지.’ 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상대의 무관심에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 힘들어 하는 환자나 가족도 있다. 내 노력에 가족관계가 좋아진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항상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게 중요하다.
누구나 대화를 하면서 자신을 이해 받기 원하고 행복해지길 원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방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확인하는 것보다 서로가 이렇게 조금씩 노력한다는 것, 함께 ‘암 여정(旅程)’의 어려운 길을 같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긍정적인 대화를 통해 가족 간의 관계도 친밀해 지고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들꽃’은 가족관계에 있어서 정말 공감되는 구절이다. 서로를 이토록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일이 있을까. 암은 간혹 그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픈 아내를 간호하거나, 학교를 휴업하고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들이 볼 때가 있다. 투덕거리면서도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암은 인생에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함께 해 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가족이기에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좋은 가족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혜, 내가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고 부족함은 채워주고 허물은 덮어준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암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는 힘,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