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면, 암도 혼자 이겨내야 하나?

[조주희 암&앎] 청년 암환자의 고충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암 경험자들이 쓴 책은 시간을 내어 반드시 읽어본다. 그들의 일상에서 병원에 이야기하지 않는 암환자로서 어려움과 필요한 것들에 대해 알 수 있고,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것과 논문이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그들만의 해결책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기억에 남는 책 가운데 몇 년 전 읽었던 《20대 암환자의 인생 표류기-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가 있다. 책의 저자는 한창 외모에 신경 쓸 20대에 혈액암에 걸려 항암치료로 대머리가 된 것도 모자라, 혈액암이 코 주위를 침범해 얼굴이 망가지고 급기야는 ‘이번 생에 잘생김을 포기’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저자는 마냥 절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프로아픔러’라고 부르며 암과 생활, 가족, 일상 등 우리가 아프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해 전한다.

저자는 단지 암치료과정에서 써온 일기들을 역어서 낸 책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암환자로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반성하기도 했다. 우울하고 무거울 것 같았던 암경험에 적당하고 젊은 유쾌함이 묻어나는 반면, 젊은 암환자가 경험하는 삶의 본질의 어려움에 대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을 접한 후로 나는 청년 암환자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청년 암환자가 있다. ‘청년 암환자’는 국가에 따라 기준과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20~30대에 암을 진단받은 사람들을 칭한다. 우리나라에서 청년 암환자의 비율은 전체 암환자의 7~8%로 암을 새로 진단받은 13명 중 1명이 해당한다. 문제는 최근 5년 사이에 청년 암환자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85세라고 하면, 보통 암은 60세 전후로 위험도가 올라가는데 만약 이 연령대에 진단을 받으면 약 25년을 암경험자로 살아야 한다. 반면, 20~30대에 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55~65년을 암겸험자로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 암과 관련된 연구는 전자의 25년을 중심으로 암경험자의 삶에 질에 대하여 고민하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애쓴다. 젊은 암환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얼마전 30대 유방암 환자가 암교육센터를 찾아왔다.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일을 하다가 유방암을 진단받아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 집에서 거처하고 있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암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은 뒤부터 이전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데 어머니가 출근하며 난방을 끄고 나가 온 몸이 아팠다며, 치료 전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일인데도 아프니 모든 것이 다 서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독립하고 싶은데 마땅히 수입이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며 우울감을 비롯한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어떤 20대 환자는 대학생활 중 혈액암을 진단받았는데 치료가 예상보다 오래 걸려 학업 중단과 함께 꿈에 대한 막염함을 토로하고, 또 어떤 30대 환자는 항문암으로 수술 후 영구장루를 갖게 돼 사회생활, 연애, 결혼에 대한 고민을 호소한다. 이 밖에도 암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고민하는 30대 여자 환자나 위암치료 후 직장에 복귀하였지만 암질병력으로 승진을 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30대 환자 등 사회적 역할 내에서 질병의 치료 외에 매일매일 해결해야 할 일상의 숙제가 많다.

이렇듯 청년 암환자들의 암경험은 나이 들어 진단받은 암환자와는 다른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생각해보라, 삶이 채 여물기 전에 암이라는 커다란 짐을 받아들이고 변한 몸과 마음 그리고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젊은 암 환자의 처지를.

암을 겪은 뒤 삶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오롯이 ‘치료’에만 집중한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암경험자는 경력 단절과 생계 불안, 주위의 불편한 시선과 맞닥뜨리게 된다.

최근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에 새로 온 15세 이상 암환자 85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통(Disterss) 검사에 따르면, 15~39세 암환자는 65세 이상 환자보다 직장·재정 문제는 5배, 육아 문제는 6.3배 더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하게 캐나다의 한 연구에서는 최대 5년동안 암 치료를 받아온 만 18~34세 암환자에게 암 경험과 미충족 요구 조사를 시행했더니 암 재발 두려움(84%), 직장과 학교 복귀(62%), 건강 보험 가입 어려움(41%) 등이 나타났다.

사회적 지위가 안정적이지 않은 청년암환자는 우리 사회의 질병으로 인한 새로운취약 계층이다. 특히 이런 취약계층에는 경제적 지원, 심리 사회적인 돌봄이 절실 하지만 국내에선 암 치료로 인한 경력 단절 혹은 사회적 이탈에 관심이 제한적이고, 특히 젊은 층 암에 대한 제도는 전무한 게 현실이다.

소아암의 상당수는 국가 또는 민간 차원에서 복지재단을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고령층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움을 일부 받을 수 있다. 장년층과 달리 청년 암환자는 이때까지 쌓아 온 경제·사회적 자산이나 보험도 부족하다. 암 마저도 ‘청춘’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싸워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의료 기술과 치료 방법은 상향평준화 되지만, 나이에 따라 암환자가 경험하는 삶의 질에 다양한 격차가 발생한다. 자아를 형성하거나 실현하며 학업과 취업, 결혼과 육아를 하며 한참 자신의 인생을 써나가야 하는 20, 30대에 암은 완치가 되어도 삶의 질은 떨어진다. 청년은 우리사회의 미래이고, 이 사회의 중요한 자원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암이라는 질병에 굴복하지 않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조화를 무너뜨리지 않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게 국가 차원의 지원시스템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삶과 치료의 균형’이라는 개념을 적용한 새로운 정책 도입이 절실하다.

더불어 우리의 사회적 시선의 변화도 필요하다. 우리의 위로는 미숙할 지 모른다. 다만, ‘젊은 사람이 왜 암에 걸려?’, ‘젊은데 암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상대의 질병을 가볍게 여겨 상처 주어서는 안 된다.

‘젊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빛이다’는 괴테의 말처럼 다행히, 요즘 청년 암환자들은 치료 영상일기, 캔서테이너 (cancer + entertainer) 등으로 암을 숨기지 않고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소셜미디어 네트워크(SNS), 유튜브, 책 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들의 평범함 일기가 다른 사람의 삶에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암밍아웃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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