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뒤로 부탁하면 환자를 더 잘 봐줄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병원 민원과 의료 공정성
각 지역의 제후가 스스로 왕을 칭하며 '천하의 통일'을 위해 격돌하던 전국시대, 진(秦)나라는 그리 대단한 세력이 아니었다. 북서쪽의 변방에 위치한 진나라는 제나라 같은 전통적인 강자와 비교해 문화와 경제, 통치제도, 모두 낙후했고 유목민의 침략에도 취약했다. 심지어 중원에선 진나라 자체를 유목민과 다름없는 존재라 여기기도 했다. 진나라가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훗날 시황제 무렵 중국을 통일한 제국으로 발돋움한 것에는 상앙(공손앙)의 개혁이 크게 공헌했다.
원래는 위나라에서 활동하던 상앙은 진나라 효공이 인재등용에 적극적이란 소문을 듣고 찾아가 진나라를 발전시킬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다. 상앙이 효공에게 제시한 계획은 엄격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을 뼈대로 한 '부국강병책'으로 요순시대를 모범으로 삼는 당대의 왕도정치와는 완전히 달랐다. 상앙의 계획은 '법가사상'에 해당하며 훗날의 마키아벨리즘과 유사한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효공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상앙의 새로운 법에는 많은 반대가 따랐다. 특히 '신분을 막론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부분에 저항이 컸다. 그래서 상앙은 본보기를 보이려고 법을 어기고 중죄인을 숨겨준 왕세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물론 왕세자를 실제로 처형할 수는 없어 왕세자 측근의 코를 베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앙의 새로운 법이 뿌리내렸으며 덕분에 진나라는 '변방의 낙후한 국가'에서 '통일을 주도하는 강국'으로 떠오른다.
물론 '상앙의 법'은 매우 가혹하고 엄격했으며 부국강병과 중앙집권이란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신분을 막론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부분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아주 매력적이다.
얼마 전, 수도권 대형병원 1인실에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다양한 기저질환을 지닌 환자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방문했고 1인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발열 혹은 호흡곤란이 있으면 응급실 격리구역에서 코로나19확진검사를 시행하여 결과를 확인하고 병동으로 입원하는 통상적인 사례와 달리 환자는 코로나19확진검사의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1인실로 입원했고 사망 후, 코로나19 양성으로 밝혀졌다. 덧붙여 환자가 병원관계자의 가족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물론 호흡곤란이 심한 환자, 특히 1인실에 입원해서 치료했음에도 사망할 만큼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격리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지 않고 수용하여 치료한 것은 오히려 칭찬받을 행동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코로나19확진검사를 확인하기 전에도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1인실에 입원시켜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병원관계자의 가족이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진료를 진행했을까?
응급실에 근무하다보면 '나와 친한 OO이 환자로 응급실을 방문한다'며 부탁하는 전화를 받을 때가 많다. 그런 전화를 하는 사람은 지역 유지와 정치인부터 병원 직원, 선배 의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다들 그런 전화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런 전화를 하면 특별히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병원과 경찰서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한다'는 말은 씁쓸하지만 '상식 중의 상식'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는 병원과 경찰서에서조차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한다'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상을 반영하는 암묵지(暗黙知)가 아닐까?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2000년 전 상앙이 주장한 '공정'이 여전히 힘을 얻는 것은 이러한 불공정이 만연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그러나 요즘 젊은 의사들은 누가 부탁한다고 특별히 더 잘 신경 쓰지 않으며, 설령 일부가 특별히 신경 쓰면 'VIP 증후군‘으로 동티가 나기 일쑤라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비록 진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며 의료 현장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민원 부탁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수고’로 여기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