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0월 18일이 '산의 날'이 됐을까?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94호 (2021-10-18일자)
산과 등산에 대한 명언을 통해 배우는 삶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이렇게 시작하는 김지하의 절창 ‘빈 산’에서의 산(山)은 자신 또는 시대의 절망적 상황을 객체화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 시가 발표되던 1970년대 우리나라 산의 태반은 벌거숭이산, 민둥산이었습니다.
어릴 적 고속버스나 완행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갈 때 창밖 산들은 온통 황토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나무를 땔감으로 썼고, 1960년대까지 화전농사가 있었기 때문에 나무 우거진 산들이 귀했었죠? 게다가 한국전쟁 탓에 국토의 동맥, 정맥이 불타버렸으니….
K-팝에 이어 K-드라마가 세계를 흔들고 있지만, 짙은 초록색으로 바뀐 우리나라의 산들도 세계의 자랑거리가 아닐까요? 세계 최악의 민둥산들이 OECD 국가 가운데 3, 4위의 산림률을 자랑하는 푸른 산으로 바뀌었으니….
여기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산림법을 제정하고 산림청을 발족시켜 산림운동을 이끌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이 큽니다. 박정희 정권은 30여 년 동안 100억 그루 넘는 나무를 심어 국토의 65% 이상을 산림으로 채웠지요. 박 정권이 공해방지법에 이어 환경보전법을 제정했고 그린벨트를 지정해서 국토를 보호한 덕분에 우리 산들도 시나브로 초록색으로 바뀔 수가 있었지요. 산림 전문가들은 이 공로만 해도 그의 허물을 덮고도 남는다고 주장하지요.
오늘(10월 18일)은 ‘산의 날’입니다. 국제연합(UN)이 2002년을 '세계 산의 해(the International Year of Mountains)'로 선언한 것을 계기로, 산림청이 ‘국민이 산에 직접 가서 산을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산의 가치와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것이지요. 참고로 국제 산의 날은 12월 11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왜 하필 10월8일일까요? 산림청이 ‘산의 날’을 언제로 할까 여론을 살폈더니, 10월이 1순위였습니다. 10월은 아침 이슬이 서리로 바뀐다는 한로(10월8일경)와 높은 곳에 올라(登高) 단풍 풍류를 즐기던 중양절(음력 9월9일)이 있는 달이지요. 산림청은 단풍이 80% 이상 물드는 절정기를 전국으로 평균해보니 10월 18일경으로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엔 맞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나무 목(木)이 ‘十’과 ‘八’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18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은 ‘산의 날’입니다. 산은 국토를 지키는 허파입니다. 산은 거기 떡 버티고 있으며 사람을 부릅니다. 산을 찾는 사람은 대체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지만, 산을 무시하면 산이 무자비한 얼굴로 바뀌기도 합니다. 산은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어머니 역할도 하고, 수양의 터를 마련하는 아버지 구실도 합니다. 산은 또 사람의 거울이 되기도 하지요.
많은 현자들이 산에 대해서 명언을 남겼고, 시인들과 가수들은 산을 노래했습니다. 오늘은 단풍 산행 계획을 짜면서, 산에 대한 명언을 되새기면서 산과 우리를 함께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산과 등산에 대한 명언들
○지혜로운 사람은 (강과 같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지자요수 知者樂水, 인자요산 仁者樂山). -공자
○계곡에서는 안 보일지라도, 모든 산에는 길이 있다. -시어도어 로스케(미국의 시인)
○최고 높이의 산을 오를 때에도 한 번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바바라 월터스(미국의 언론인)
○인간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인간을 허락하는 것. -존 뮤어(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자연주의자)
○인간은 결코 산을 정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잠시 그 정상에 서 있을 수는 있지만 바람이 이내 우리의 발자국을 지워 버린다. -알린 블럼(미국의 등산가)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알랑 드 샤뗄리우스(프랑스의 등반가)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에드먼드 힐러리(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뉴질랜드의 등반가)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 전에는 진정 오른 것이 아니다. -조지 말로리(“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느냐?”는 우문에 “그것이 거기 있기에”라는 현답을 남긴 영국의 등산가).
○굳이 정상에 오를 필요는 없다 –보이테크 쿠르티카(히말라야 가셔브롬 Ⅳ의 위험한 서쪽빙벽을 오르고 눈앞의 평탄한 정상을 오르지 않고 하산하며)
○등산의 기쁨은 산정에 올랐을 때 가장 클 것이다. 그러나 내 최고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오늘의 음악]
어제(10월 17일)는 프리드리히 쇼팽의 기일이었습니다. 첫 곡으로는 유방암을 이기고, 최근 데뷔 50돌 공연을 가진,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환상 즉흥곡’ 준비했습니다. 조성진이 발라드 1번 연주합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이 독일 장교에게 발각돼 처음 연주하는 그 곡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