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와 사진작가로 발자취 남긴 의사들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⑲청량리정신병원 설립한 의사는 문필가

이순흥의 곤충사진.[사진출처=의학의 선구자]
현대사에서 문학과 사진에서 발자취를 남긴 의사가 적지 않으며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이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해방 이후 사진과 문학에서 직업인 못지않게 명성을 얻은 의사를 꼽으라면 수필 분야 최신해와 곤충사진의 이순흥을 들 수 있겠다.

삼락당(三樂堂) 최신해(1919~1991)는 부산에서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북 경주와 황해도 해주를 거쳐 경남 울산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친이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면서 서울에서 살게 됐다. 제일고보(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전에 진학해 1941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경성제대 의학부 정신과에서 수련을 받았다.

최신해는 광복이 되자 서울 청량리뇌병원을 설립해 46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활동했다. 청량리뇌병원은 나중에 청량리정신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18년 문을 닫았다. 화가 이중섭, 시인 천상병 등이 입원했던 병원으로도 유명하다. 최신해는 1951년부터 3년 동안 육군군의학교 교관으로 근무했고, 1956년에 도미하여 하버드대학 매사추세츠병원 정신과에서 수련을 받았으며, 1961년에는 일본 야마구치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신해가 설립한 청량리정신병원.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불렸으며, 한때 서울 시민 사이에선 "청량리 가야겠다"란 말이 있었다. [사진출처=B뉴스화면캡처]
삼락당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문필가로서 유명했다. 의사가 된지 2년 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1945년 조선일보사의 요청으로 《조광》에 ‘탐라기행’을 썼고, 1970년대 중반에는 ‘박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수필집 《화요일 밤의 얼굴들》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답게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층적 고뇌와 현대인의 문명병적인 문제를 독특한 문체에 담았다. 삼락당은 《심야의 해바라기》 《문고판 인생》 《훔친 사과가 맛있다》 등 베스트셀러 수필집과 《노이로제의 치료》 《의학 속의 신화》 등 의학 관련 서적을 펴냈다.

삼락당 최신해.[사진=의학의 선구자]
1981년부터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보면서 나라의 보물을 사진에 담아 의학신보에 실었으며, 이를 《국보 찾아 10만리》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한국일보사의 스포츠레져에 ‘나의 인생. 나의 여정:국토여행 40년 최신해 박사’가 소개되기도 하였다.

최신해는 평생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살아왔다. 1971년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에 선출됐으며 연세대 의대, 서울대 의대, 서울여의대(고려대 의대의 전신), 이화여대 의대, 한양대 의대 등 여러 대학의 외래교수로 강의도 하였다. 1989년부터 최신해의 자녀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대상으로 ‘최신해학술상’을 제정해서 매년 수상하고 있다. 장남 최문식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2018년 청량리정신병원 폐업 전까지 경영을 맡았었다. 차남 최홍식(전 연세대 의대 이비인후과 교수)은 조부와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으로서 음성의학적 차원에서 훈민정음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위암 명의로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은 송인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료)가 둘째사위이다.

최신해는 의사로서도 활약했지만 대중에게는 문필가로서, 고적 답사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공로로 대한민국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순흥.[사진=의학의 선구자]
이순흥(1923~2007)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했다. 미국 뉴욕시립병원에서 소아과 수련을 마치고 1960년에 귀국해 서울 동부시립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2년 근무하였다. 그 후 동대문구 용두동에 이순흥소아과를 개원하여 작고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런데 이순흥은 의사보다 사진작가로 널리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곤충을 예술적 사진으로 표현한, 국제적으로 자랑할 작가였다.

그의 사진작가 활동은 1960년대 초 서울의약인포토클럽과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원이 된 뒤 활발했는데 1990년부터 곤충의 삶과 그 이야기를 사진예술로 전환해 사진 역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순흥은 곤충을 다루다보니 곤충학 박사로 불릴 정도로 곤충에 대해서 해박하게 됐다. 2005년에는 철에 따라 만난 곤충들과 나눈 이야기를 멋진 곤충사진 100개에 담아 《100일 간의 곤충사진 일기-접사렌즈로 본 꽃과 곤충의 이중주》를 발간했다. 이순흥은 접사렌즈를 활용하여 곤충들의 삶과 죽음, 곤충들의 사랑과 투쟁 등 보기 힘든 곤충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호평을 받았다.

그는 국전에서 특선을 여섯 번 했다. 동아국제사진살롱, 자유중국국제사진전, 일본유네스코국제사진전, 프랑스 오를레앙국제사진살롱, 캐나다 토론토국제사진 살롱 등 국제사진전에서 수상했다. 개인전을 다섯 번 가졌으며 대한민국사진대전 초대작가가 되었으며,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유승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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