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혈압이 의사만 보면 오른다고?(연구)
혈압을 잴 때 의사가 있으면 혈압이 10mmHg 이상 더 오르며, 이는 의사의 존재가 심리적인 ‘투쟁 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탈리아 밀라노-비코카대 의대 내과 연구팀은 참가자 18명을 대상으로 의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혈압, 심박수를 2회씩 쟀다. 또 전극으로 이들의 피부와 근육의 신경활동을 측정했다. 참가자 중 14명은 경증 내지 중등도의 고혈압 남성으로 치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의 수축기 혈압(최고 혈압)이 혼자 있을 때보다 의사가 옆에 있을 때에 평균 약 14mmHg 더 높았다. 또 심박수는 혼자 있을 때보다 의사가 있을 때에 약 11회 더 높았다.
특히 피부와 골격근의 신경활동 패턴은 전형적인 ‘투쟁 도피 반응’을 보였다. 이에 비해 의사가 없을 때의 심혈관 및 신경 반응은 뚜렷이 달랐다. 이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귀도 그라시 교수는 “의사가 없을 때 신체의 경보 반응이 급격히 줄었다. 따라서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혈압을 재면, 실제 혈압 수치를 훨씬 더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내용이 의사의 혈압 측정 감독 여부와 관련해 ‘투쟁 도피 반응’을 조절하는 교감신경계의 변화를 기록한 첫 연구 결과라고 밝혔다. 의료 전문가가 측정할 경우 일부 사람들의 혈압이 올라가는 ‘백의 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 현상은 수십 년 동안 알려져 왔다. 이 현상은 고혈압 환자의 약 3분의 1에서 발생한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밴더빌트대 미나 마더 부교수(임상약리학·심장학)는 “혈압과 심박수의 증가는 인지된 위협에 대한 신체의 반응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녀는 “예컨대 야생에서 곰에게 쫓기고 있다면, 피부의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의 혈관이 확장돼 해당 기관에 더 많은 혈류를 보냄으로써 정말 빨리 달리길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투쟁 도피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혈압약의 효과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간호사 및 기타 의료전문가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데도 관심을 갖고 있다. 앞선 연구에서 간호사가 혈압을 잴 때는 ‘백의 고혈압’ 현상이 덜 뚜렷했다.
미국의사협회(AMA)와 미국심장협회(AHA)는 지난해 공동보고서를 내고 가정에서의 자가 혈압 측정 확대를 지지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정확한 혈압을 재려면 등을 곧게 펴고, 발을 바닥에 대고 가만히 앉아 최소한 몇 분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혈압을 재고 그 기록을 진료 때 가져가길 권했다.
이 연구 결과는 AHA 저널 《고혈압(Hypertension)》에 실렸고 미국 건강매체 ‘헬스데이 뉴스’가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