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잊어주세요"…이젠 '알파폴드' 시대
-21세기 생물학의 ‘키 메이커’로 떠오른 인공지능
인공지능(AI)의 대명사는 ‘알파고’로 통했다. 어쩌면 그 대명사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자매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로.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야심차게 개발한 알파폴드2는 지난주 대박을 쳤다. 인체에서 생성되는 2만여 개의 단백질 전체를 포함해 대장균, 초파리, 생쥐까지 20개의 다른 생명체에 의해 생성되는 35만 개의 단백질 구조를 3D로 예측한 결과물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해당 데이터베이스까지 무료로 공개했다(https://alphafold.ebi.ac.uk). 이렇게 공개된 단백질 구조 중 25만 개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다. 해당 사이트에 공개되는 단백질 구조는 올해 연말 1억3000만 개까지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과거에는 단백질의 모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몇 달, 몇 년 또는 심지어 수십 년 동안 X선, 현미경, 그리고 실험실 벤치에서 다른 도구들과 관련된 시행착오 실험이 필요했다. 알파폴드는 그 시간을 빠르면 몇 분, 길어야 몇 시간 안으로 단축했다.
알파고는 체스와 바둑으로 세계 재패를 이뤄 일반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AI 분야 외의 다른 과학 분야에 구체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었다. 알파폴드는 다르다. 알파폴드라는 이름은 단백질의 염기서열이 접혀서 만드는 3차원 구조를 풀어내는 ‘단백질 폴딩’을 풀어내는 인공지능이란 의미다. 하지만 알파폴드의 연구 결과는 단순히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7월 26일자 뉴욕타임스는 그 구체적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 포츠머스에 있는 효소혁신센터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1억5000만t의 페트병과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연구 중이다. 효소는 유기체 내부의 화학반응을 촉매하는 고분자 단백질의 하나다.
이 연구소의 존 맥기헌 소장은 지난해 가을 혹시 딥마인드가 해당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하여 금요일 오후 퇴근 전에 7개 후보 효소의 목록을 이메일로 보냈다. 놀랍게도 그는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해서 7개 효소 모두의 3D 구조 예측 모형을 메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그중 2개는 효소혁신센터가 이미 분석한 것과 똑같이 일치했다. 나머지 5개 모형의 신뢰도도 급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우리 연구를 2년이나 앞당겨준 쾌거였습니다.”
맥기헌 소장은 알파폴드의 역할과 관련해 ‘자물쇠수리공(locksmith)’이라는 표현을 썼다. 단백질과 플라스틱처럼 엄청나게 복잡한 분자구조를 분석해내는 것이 자물쇠 구조를 밝혀내는 것을 닮아서다. 자물쇠 구조만 이해하면 그걸 열 수 있는 열쇠 제조는 쉬워진다.
코로나 19 백신 제조가 1년여 만에 가능했던 것도 과학자들이 사스와 메르스의 발병을 거치며 과학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구조를 분석했기에 가능했다. 알파폴드의 단백질 구조 예측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엄청나게 복잡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해당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 어떻게 결합돼 있을지 가장 적합한 모델을 제시한다. 이런 예측모델을 지도 내지 청사진으로 삼아서 실제 구조와 대조하는 과정만 거치면 금방 자물쇠의 구조파악이 끝난다. 그 구조에 맞춰 열쇠를 제조하면 그것이 백신이 되고 항생제, 치료제가 되는 것이다.
SF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키 메이커(key maker)’를 기억하는가? 기계문명에 의해 프로그램된 가상공간 매트릭스의 온갖 문을 열어주는 온갖 열쇠를 보유한 키 메이커 덕분에 주인공 네오는 위기일발의 순간을 벗어나 결국 매트릭스를 무너뜨리게 된다. 과연 알파폴드가 분자생물학, 면역학, 의약학은 물론 고분자화학의 문까지 열어줄 ‘키 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