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있고 남은 없는 ‘자기 도취병’
①‘조그만 일’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
②늘 ‘젠 체한다’는 욕을 들으며 ‘왕따’를 당하면서도 다른 아이보다 자신이 낫다고 생각하는 어린이.
③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 회사동료들을 지나치게 이용하는 직장인.
④특정인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사람(스토커).
얼핏 보기에 공통점이 없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 각 항목의 사람들은 자기를 극도로 소중히 여기는 ‘자기애 인격장애자’일 가능성이 크다.
▼자기애 인격장애자란?=‘병적인 나르시시스트’로도 불린다. 나르시시스트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에서 나온 말. 그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굶어 죽었다.
정신과에서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이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여기면서 남의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해로운 자기애’의 저자인 이스라엘의 쉬무엘 바크닌박사는 “나르시스는 자신이 아니라 연못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면서 “자기애 인격장애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허상(虛想)을 극단적으로 사랑한다”고 설명.
▼자기애는 필요없나?=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은 필요하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우울증에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기애는 어려울 때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반면 자기애 인격장애자는 자신의 허상(虛想)을 만들기 위한 대상으로 남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감탄하지 않으면 증오한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하급자를 채근한다. 또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뛰어들면 망신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험을 싫어한다.
5년 이상 재수를 하거나 10년 이상 고시공부에 매달린 경우처럼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목표에 매달려 허송세월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업무에서 정한 목표만큼 성취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며 매사에 흥미를 잃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도 한다. ‘모 아니면 도’식의 성격이어서 한 번 안되면 쉽게 포기한다.
▼왜 생기나?=병적 나르시시스트의 심리상태는 ‘천재로 대우받고 싶은 아이’. 정신분석학자들은 24개월 미만의 어린시절에 충격을 받거나 딸은 아버지, 아들은 어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않아 성격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고 분석. 부모가 과보호하거나 ‘특별한 사람’이기를 요구하며 키운 경우, 다른 아이에게 지지않고 양보하지 말라고 가르친 경우에도 많이 생긴다. 환자 중에 외동이 많은 것도 특징.
▼주위에 ‘환자’가 있다면?=가족이 아닌 경우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르시시스트는 가깝다고 여긴 상대에게 무시당하면 더 상처받는다는 보고도 있다. 가족이 환자라고 느껴지면 재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면담요법이 주치료.
3∼7년 동안 매주 4∼5회 45∼50분씩 상담하며 환자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 근원적 치료. 1∼2년 주 1, 2회 상담으로 사회적응력을 높이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2차증세로 우울증 강박장애 충동장애 등이 올 경우 증세에 따른 약물을 복용시켜 치료.
◎자기애 인격장애 세가지 유형
▼자신은 천재라고 믿었던 A씨(25)=명문대를 졸업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교수들에게 도저히 대답하기 힘든 문제를 질문해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낙이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고 대학졸업 후 특별한 존재로 살기 위해 피자가게 배달원을 직업으로 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 늘 아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요구했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던 B씨(30·여)=미모에다 똑똑하다. 직장인 제약회사에서 약을 훔치다 들켰다. 자신의 머리가 좋아 들키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는 근로자. 딸에게 큰 기대를 하면서도 대학졸업까지 학비를 대주지는 못해 그는 학비를 벌면서 공부했다. 그는 자신을 ‘불운한 천재’라고 믿고 있다. 사람과 오래 만나 사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싫어해 연인을 늘 바꾼다.
▼인생의 실패자라고 믿는 C씨(45)=기업의 고위간부였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 성공했다고 믿었으며 능력없는 직원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회사사정으로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경영대학원에 다니게 되자 스스로 ‘불운하다’고 여겼다. 때마침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들이 반항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믿고 의기소침.
(하버드대의대 정신과 존 건더슨 교수의 논문 ‘나르시스틱 퍼스낼리티’에 소개된 내용)
◎자기애 인격장애 진단법
①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이 실제보다 뛰어나다고 믿고 다른 사람이 과대평가해 주기를 바란다.
②끝없는 성공 또는 권력, 명석함, 운명적인 사랑 등을 믿고 집착한다.
③자신은 특별하고 독특해서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특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④주위사람에게 과도한 감탄을 요구한다.
⑤자신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외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고 남들은 자신의 말에 순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⑥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때로 착취한다.
⑦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이 없다.
⑧질투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느낀다.
⑨젠 체하고 건방진 행동을 잘 한다.
▼진단방법=자신은 잘 모르기 때문에 주위사람이 평가한다. 5개 이상이면 ‘자기애적 인격장애’.〈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병 진단분류표 ‘DSMⅥ’의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