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구성원과 수술실 CCTV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초등학교 무렵 폐렴에 걸려 집 근처 대학병원에 열흘 남짓 입원했다. 또래 아이처럼 감기, 독감, 장염 그리고 소소한 외상으로 병원을 제법 자주 찾았지만 입원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행히 이틀째부터 기침과 발열이 호전하여 2, 3일마다 정맥주사를 교환하는 것과 혈액검사를 시행하는 것을 제외하면 병원생활은 두렵다기보다 신기했다.

그리고 그런 신기함이 슬슬 무료함으로 바뀔 무렵, 아침 회진에서 교수님이 퇴원일을 지시했다. 그날 오후 퇴원을 준비하던 중, 어머니는 나에게 지금껏 치료해준 분께 감사인사를 전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복도에 나가 간호사 분께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초등학생 입장에서는 의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꽤 시간이 흘러 포기하려는 순간, 하얀 의사가운을 입은 서너 명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침 회진마다 교수님 뒤에 서 있던 분들이라 나를 담당한 의사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들에게 ‘치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고 말하자 다들 약간 당황하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의학과 3학년이 되어 병원실습을 시작한 후에야 그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겸연쩍은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내가 ‘치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란 말을 건넨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의대실습생에 해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퇴원하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는 꼬마에게 당황하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대교육은 의예과 2년과 의학과 4년으로 구성한다. 또 4년의 의학과 과정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전반부 2년과 대학병원에서 다양한 임상과의 진료 현장을 경험하는 후반부 2년으로 구성한다. ‘PK’란 약칭으로 불리는 후반부 2년의 의대실습생 시절에는 ‘의과대학생’이라 표기한 명찰을 착용하지만 의사가운을 입고 주머니는 갖가지 필기구, 청진기, 환자명단으로 불룩해서 레지던트를 비롯한 전공의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덧붙여 의대실습생이 진료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필자가 의대실습생이던 2000년대 초반의 경험만 돌아봐도 그렇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본격적인 진료에 앞서 간단한 예진을 담당했고 응급의학과에서는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의 심전도를 찍었으나 피부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안과, 영상의학과 같은 임상과에서는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에 가까웠고 내과에서는 거대한 회진행렬의 끄트머리를 담당했으며 딱 그에 어울리는 업무에 배정되었다. 정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외과, 비뇨기과처럼 수술을 담당하는 임상과에서는 숨을 죽인 채 수술실 구석에 있을 때가 많았고 가끔 인력이 부족하면 견인기를 당기는 것 같은 매우 간단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환자와 보호자가 의대실습생의 존재를 인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생활한 환자와 보호자를 제외하면 의대실습생과 인턴, 레지던트 같은 전공의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무렵 의대실습생에게 ‘치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건넨 것처럼 의대실습생 시절의 나에게 질환의 경과를 묻거나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적지 않았다.

물론 필자의 의대실습생 경험은 2000년대 초반이다. 그러나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요즘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국의 의료제도가 지닌 특징 때문에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대학병원 규모의 3차 의료기관을 찾고 해당 분야의 대가로 알려진 대학교수의 진료를 희망한다.

그러나 대학병원에는 유명한 대학교수 외에도 전임의, 레지던트, 인턴처럼 아직 교육과정에 있는 다양한 의료진이 있고 의대실습생도 존재한다. 환자의 치료에서 대학교수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가장 중요한 판단을 담당할 것이나 가장 일선에서 환자와 마주하는 의료진은 레지던트일 때가 많고 치료과정에 의대실습생이 참관할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 자체가 진료와 함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라 다른 선진국의 대학병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다만 미국, 영국, 일본 같은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가 전임의, 레지던트, 인턴이 진료에 참여하는 것과 의대실습생이 진료를 참관하는 것을 알고 있을 때가 많다. 레지던트와 인턴이 진료에 참여하는 정도와 의대실습생이 참관하는 수준 역시 의료진, 환자, 보호자 사이에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한 합의도 부족하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도 적지 않다.

요즘 ‘수술실의 CCTV 설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주장에 나름의 근거가 있고 또 양쪽 모두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걱정을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병원에서 전임의, 전공의, 의대실습생의 참여와 참관의 정도처럼 ‘수술실의 CCTV 설치’를 시행하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고 걱정스럽다. 무턱대고 법안을 반대하거나 밀어붙이는 것에 앞서 법안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신중한 고려와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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