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논란의 뿌리는?
[허윤정의 의료세상]
의료계의 대리 수술 행태는 뿌리 깊다. 1972년 12월 18일자 경향신문을 보자. 7면에 ”조수시켜 수술 의사면허 취소“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보건사회부가 70년 4월 5일 환자 이 모씨를 개복수술하면서 무면허 조수 김태중 씨에게 집도케 하여 환자 이 씨를 숨지게 하는 등 상습적으로 무면허 조수에게 환자를 진료케 하여 제주시 경화의원 의사 이성우 씨의 의사면허를 의료법19조1항1호에 의거, 취소 처분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서울 그랜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과 코 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뇌사에 빠진 사건을 계기로 대리수술 문제가 다시 제기된 지 7년이 지났다. 지난 2016년 고 권대희 사건 사망 사건은 아직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권대희 씨를 수술실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성형외과 원장을 의료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애초에 CCTV 자료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어 지난 2018년 척추·관절 전문병원 유령수술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인천21세기병원에서 행정직원이 척추 수술을 진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동영상에는 한 행정직원이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허리 부위를 절개하자 의사인 원장이 5분가량 수술하고, 이어 또 다른 행정직원이 수술 부위를 봉합하는 장면이 담겼다. 연이어 지난 8일 광주의 척추 전문병원에서도 간호조무사들이 수백 건에 이르는 수술을 대신 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이후 의료계의 끊이지 않는 대리수술 사건은 국회에 수술실 CCTV 설치법 논의를 재점화하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에 찬반 논쟁이 뜨겁다. 찬성 쪽은 반복되는 대리수술 등 의료사고 은폐를 막기 위해 수술실 안 설치를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는 전체 수술의 0.001%에 불과한 대리수술 비중을 고려해서 위험도 높은 수술에 대한 의료진의 기피 우려, 환자 신체 노출에 따른 인권 침해 및 해외 강제 사례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반대하고 있다. 물론 의료계의 주장은 의미 있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 국민이 수용할지는 다른 문제다.
흔히 맹장수술이라고 부르는 충수염수술 시점을 놓치면 복막염으로 진행돼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정책도 다르지 않다. 대리수술 사건이 반복되어서야 의협은 이미 지난 2018년 10월 10일 대한의학회를 비롯한 20개 단체와 공동으로 대리수술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의사로서 본분을 망각한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의료윤리, 위법, 불법행위인 대리수술을 뿌리 뽑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의협이 동원한 모든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되묻고 싶다. 지난 2012년 의협은 회원들에게 고도의 윤리적 수준을 요구하며 ‘자정선언문’을 채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실제 선언문이 행동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스스로를 감독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이 어떻게 투명성 없이 권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의료계의 변화는 분명 바람직하다. 의협은 대리수술 사건 관계자들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검찰에 고발하고, 대표의료기관장을 중앙윤리위원회에 넘겼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무자격자 대리수술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의미 있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시점은 국민의 기대에 비해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또한 규탄 성명 등은 이 시점에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국민과 의사의 신뢰를 기반으로 수술실의 안전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국민은 의료계가 지적하는 수많은 부작용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소한의 안전의 근거를 확보해야겠다는 절박한 절규를 보내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논란은 수많은 다른 논란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수술지연, 병원의 인력구조, 임상실습, 정보보호 등 다양한 문제의 직면을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때다.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사소한 변화가 큰 사건으로 발전하는 현상을 다룰 때 주로 사용된다. 대리수술 사건은 수술실 CCTV 설치 논란으로 마무리되기보다, 의료계에 더 큰 개혁의 과제를 신속하게 선물하는 숙제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틀로 지어진 의료법의 낡은 기반을 차제에 리셋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의사들이 지금이라도 10년 전 자정선언문을 돌아보고, 악성 종양을 도려내는 심경으로 자정선언문을 이행한다면 전문가 집단으로 다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노력이 수술실 CCTV 설치 요구에 대한 대응에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