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되는 까닭?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75호 (2021-05-31일자)
우리는 '악의 평범성'에서 자유로운가?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나와 관련 있는 이 세 나라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준비됐습니다. 여러분, 또 만납시다.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전쟁의 법칙과 내 깃발에 복종했을 따름입니다.”
1962년 오늘(5월 31일), ‘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자’였던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의 형장에서 숨지기 전에 이렇게 떳떳하게 말했습니다. 반성은 없었습니다.
아이히만은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미국 포로수용소에서 신분을 세탁하고 위기를 모면한 뒤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갑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기계공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벤츠 자동차 아르헨티나 법인의 간부로 일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이히만은 아들이 아버지의 무용담에 대해서 떠벌리는 것을 들은 친구 실비아 헤르만이 이스라엘 정부에 신고하는 바람에 덜미가 잡힙니다. 실비아는 가족이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던 유대인이었지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2년 동안 준비 끝에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이스라엘로 데리고 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자신은 국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며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상부의 명령을 잘 지키지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독일 출신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특별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봅니다. 그의 정신 상태를 감정한 의사 6명이 끔찍할 정도로 ‘정상적’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를 다룬 영화 포스터에서 '아버지, 군인, 남편, 그리고 괴물'로 표현한 것처럼 괴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한 남성이었습니다. 아렌트는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합니다.
“악한 일은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아이히만이 의도된 악행을 했다며 아렌트를 비판하지만, 아렌트는 그 악행도 사유의 결핍에서 나오는 ‘악의 평범성’ 때문이라고 반박합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이히만은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때, 아렌트가 말한 생각은 ‘내가 틀리지 않았는가,’ ‘우리의 가치가 틀릴 수 있지 않은가’의 반성적(反省的) 사유입니다. 반성적 사유가 없는 신념은 종종 악의 평범성의 재료가 되곤 합니다.
우리는 과연 ‘악의 평범성’에서 자유로울까요? 우리 사회는 맹목적 신념과 1차원적 사고가 지배하고, 반성적 사유(思惟)는 경시되고 있지 않나요? 정의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이 횡행하고, 정치와 언론이 증오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은 함께 우리를 돌아보는 ‘사유의 하루’가 되면 어떨까요? 우리는 아이히만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아이히만의 사고도 광기가 지배한 독일 사회에서는 정의였는데…, 우리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우리는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내가 비난하는 사람과 나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나는 정말 사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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