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의 우두 백신과 코로나19 백신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72호 (2021-05-14일자)
미신과 싸우며 천연두를 이긴, 제너의 종두법
어리석게도, 지난해 요즈음만 해도 하루하루 백신 때문에 웃고 울고, 가슴 졸이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코로나19 정국에 백신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군요.
1796년 오늘(5월14일)은 인류 역사에 백신이 처음 등장한 날입니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미라에게서도 발견된 인류의 질병, 16세기 아즈텍 문명을 몰락시킨 세계사의 역병,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호환(虎患) 만큼이나 두려웠던 마마(媽媽), 천연두를 극복한 백신이 첫 접종된 것입니다.
이날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8세 소년의 양팔에 상처를 내고, 소젖 짜는 여성의 손에 난 물집에서 뽑아낸 고름을 주입했습니다. 제너는 며칠 앓아누웠다가 회복된 소년에게 6주 뒤 천연두 고름을 주입한 뒤 우두법(牛痘法)의 효과를 확인했지요. 라틴어에서 암소를 뜻하는 ‘Vacca’에서 유래한 ‘Vaccine’은 이후 다양한 질병을 예방하는, 인류의 무기가 됐습니다.
225년 전 백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중국과 이슬람 등에서는 수 백 년 전부터 종두법(種痘法)의 일종으로,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는 인두법(人痘法)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18세기 초 영국의 메리 몬테규는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오스만 제국에서 머물 때 인두법의 효과를 확인하고 이를 영국에 도입했지요.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몬테규는 우선 범죄자와 빈민에게 인두법을 실시했고, 효과를 입증한 다음 왕족에게도 접종했습니다. 그러나 인두 접종을 받고 되레 천연두에 걸려서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는 인두법과 별개로 우두법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소젖 짜는 여성들은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소문에 대해 일부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였지요. 런던의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저명 의학자 존 헌터로부터 외과학과 해부학을 배우고 고향 버클리로 돌아온 제너는 소젖 짜는 여성을 관찰하고는 우두법에 대해 체계적, 과학적으로 연구한 점에서 진일보했습니다. 제너는 8세 소년에 대한 첫 접종 결과를 왕립학회에 편지로 보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제너는 23명에게 우두를 접종한 다음, 2년 뒤 다시 책자로 보냅니다.
우두법이 열렬히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종교계에서는 하늘의 섭리를 인간이 극복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반대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이 시체에서 옮긴다는 이론을 더 믿었습니다. 우두접종을 받으면 얼굴이 소로 바뀐다는 보고를 한 의학자도 있었고, 백신을 접종받은 소녀가 동물에게서 걸리는 피부병에 걸렸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세계 각국에서 연구결과가 쌓이며 우두법이 천연두를 이기는 무기로 정착됐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진 대로. 송촌 지석영이 우두법을 보급했습니다. 일본 학자가 쓴 종두법 책을 스승 박영선으로부터 받아서 읽었던 송촌은 조카가 마마의 희생양이 되자, 다섯 냥을 들고 부산의 일본 해군병원 제생의원으로 찾아가 우두법을 배웁니다.
송촌이 처가에서 두 살 난 처남에게 우두법을 시행하려고 하자, 장인은 “아이를 죽이려느냐”고 펄쩍 뜁니다. 송촌은 사위를 미친놈으로 아는 장인과 연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접종을 시도했고, 다행히 사흘 뒤 처남에게 별 탈 없이 우두자국이 올라왔습니다.
송촌 역시 우두법을 반대하는 미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친일파’인 개화파가 백성을 해치려고 도입했다는 설, 일본인이 조선인을 소처럼 온순하게 만들려는 계략이라는 설 등이 우두법 보급을 가로막았습니다. 송촌은 결국 모함 때문에 전남 강진군 신지도에 유배를 갑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우두접종을 하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며 슬슬 피했다고 합니다.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의 천연두 정복을 선언했습니다. 이에는 WHO의 의무관으로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서 맹활약한 주인호, 한응수 박사 등 우리나라 의학자들의 활약도 컸습니다.
m-RNA 백신을 비롯한 코로나19 백신은 천연두 백신보다 훨씬 과학적인 과정을 거쳐 개발됐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온갖 풍문 때문에 접종에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21세기에도 18세기와 마찬가지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풍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역당국은 ‘가짜뉴스’와 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 쉽고 명쾌하게 알리고, 접종사고에 대해 겸허하게 온갖 경우의 수를 파악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일을 철저히 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정부는 혹시 ‘무지몽매한 국민’ 탓을 하면서 이런 일에 게으른지는 않은지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을 믿어야 하겠지요. 그러지 않아서 아이를 마마로 잃거나 평생 곰보 자국을 가진 채 지내야만했던 전(前) 근대인을 닮아서는 안 되겠지요? 세계에서 위생수칙에 가장 철저한 국민이기에 정부가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고, 부작용 대책을 좀더 명확히 세운다면 충분히 과학을 따를 것으로 믿습니다. 여기에 더해 인류의 천연두 극복에 우리 보건의료인들이 기여했듯, 대한민국이 인류의 코로나19 극복에 기여했으면 좋을 텐데, 그것 역시 꿈은 아니겠지요?
오늘의 음악
첫 곡은 1885년 오늘 독일에서 태어난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가 지휘하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서곡입니다. 1988년 오늘 천국으로 떠난 프랭크 시나트라가 딸 낸시 시나트라와 함께 부르는 ‘Something Stupid’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