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헬스앤] 약골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경우
102세(1920년생)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어릴 때 몸이 약해 어머니가 늘 걱정하셨다”고 회고했다. 잔병치레도 잦아 장수(長壽)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요즘 건강수명(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의 상징이 됐다. 틀니나 보청기, 지팡이가 옆에 없고 기억력이 탁월하다. 매일 글을 쓰고 코로나19 이전까지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강의를 했다.
김형석 교수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운동도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잔다. 하루 한 시간쯤 산책하며 원고를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서울 연희동 단독주택 2층을 몇 번씩 오르내린다. 자연스럽게 근력운동이 된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 수영장에 갔다.
약골(弱骨)은 몸이 약한 사람을 말한다. 김형석 교수도 넓은 의미의 약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100세를 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한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듣던 “건강 조심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일상에서 무리하지 않는 삶이 102세 건강의 버팀목이 된 것으로 보인다.
평소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돌연사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들은 “평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건강체질이었다”고 말한다. 고인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해 건강검진 등을 소홀히 한 게 오히려 독이 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돌연사의 원인은 대부분 심장병(협심증-심근경색)이나 뇌졸중(뇌출혈, 뇌경색)이다. 증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아 몸속에서 병을 키우다 뜻밖의 화를 당할 수 있다.
반면에 일찍 당뇨병, 심장병 판정을 받은 사람이 건강수명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은 완치가 안 되기 때문에 평생 음식과 운동으로 몸을 관리해야 한다. 요즘도 당뇨병을 치료하지 않아 실명이나 발가락 절단 등 부작용을 겪는 사람이 있다. 일상에서 항상 당뇨병을 의식하면 건강관리의 기본을 실천할 수 있다.
중년들이 건강을 자신해 무리한 운동을 하다 크게 다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산악사고의 주 연령층은 50대로 실족·추락이 가장 많았다. 등산 중 고혈압, 심장병 등 개인질환으로 쓰러진 사람도 상당수였다. 대부분 무리한 산행 코스를 선택했다가 소방헬기까지 출동하는 사고를 당했다.
마라톤대회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경주 중 쓰러진 사람들은 마라톤 초보자가 아니라 몇 번 완주한 경험자가 대부분이다. 체력을 과신해 무리한 질주를 하다 병원으로 옮겨지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헬스장에서도 무거운 역기를 들다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고혈압, 심장병 초기 환자들이다. 무리한 운동은 활성산소를 양산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대회에 참가한 운동선수들이 은퇴해 관절염 등 각종 병으로 고생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나는 약골이니까” 소극적인 생각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약골'인 사람도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건강수명을 누릴 수 있다.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체력이 약한 사람도 하루 30분 이상씩 일주일에 3번 이상 운동을 하면, 체력이 강한 사람의 사망위험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 체력수준은 유전성도 있지만 운동에 의해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은 그 강도와 관계없이 심혈관질환과 암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김형석 교수는 노인에게 가장 안전한 운동 중의 하나인 수영을 즐겼다. 수영은 무릎 관절이 좋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굳이 수영 자세를 취하지 않더라도 물속에서 30분 이상 그냥 다리와 팔을 움직여도 높은 건강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매일 자택 2층을 오르내리는 것은 매우 좋은 근력운동이다. 다만 낙상을 막기 위해 보호대를 꼭 잡고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김형석 교수의 아침 식사는 우유 한 잔, 계란 하나, 토스트 반 조각. 사과 2-3조각이라고 한다. 근육보강에 좋은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음식들이다. 하루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적당한 탄수화물도 섞여 있다. 김형석 교수의 장수 비결은 ‘비결’이라고 할 수 없다. 무리하지 않는 운동과 식사, 끊임없는 두뇌활동이 치매 없는 건강수명의 원천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