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닥터] “대장암, 4기라도 절망은 일러요”
서울성모병원 외과 이윤석 교수
직장암 3기의 50대 남성이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복강경을 집어넣기 위해 환자의 배를 절개하려는 이윤석 교수의 머리에 지난 3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군의관을 마치고 개원을 하려는 자신에게 김영하 교수가 저녁 먹자며 불러내 학교에 남을 것을 제안했을 때 당황했던 장면, 김 교수가 대장암을 세부전공으로 정해주면서 “앞으로 복강경 수술이 대세일 테니까 준비하라”던 순간, 도서관에서 밤새 책을 뒤지며 혼자 복강경수술 공부하던 나날들, 며칠 전 스승이 “복강경 수술일정 잡아놨다”고 통보하던 때….
이 교수는 숨을 들이쉬고 수술에 들어갔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하나하나 확인하며 손을 움직였다. 지금은 2~3시간이면 끝날 수술이었지만, 아침 9시에 시작한 수술이 밤 8시 무렵 끝났다. 이 교수는 환자가 병실로 가는 것까지 보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음날 아침 부리나케 입원실로 회진을 갔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개복수술이라면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있어야 할 환자가 침실에 걸터앉은 채 “저, 괜찮아요!” 하고 인사를 건네 온 것. 이 교수의 머릿속에서 “복강경 수술이 내가 갈 길”이라는 목소리가 울러 펴졌다.
서울성모병원 외과 이윤석 교수(51)는 2004년 5월 인천성모병원에서 이처럼 대장암 복강경 수술의 세계에 들어선 뒤 지금까지 4000여 명을 살리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의사로 자리 잡았다. 이 교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한해 15~20회 세계 곳곳으로 나가서 초청 강연을 했고, 해외에서 매년 10~15명이 찾아와 그에게 연수를 받았다.
이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에서 남들이 따분하다는 외과 수업이 흥미로워서 방학 때 외과 실습을 자원할 정도로 외과 체질이었다. 인천성모병원 인턴 때 인근 경찰종합학교에서 폭파사고가 나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들에게 외과 전공의들이 마치 영화처럼 기도삽관, 기관절개에 이어 목 아래 큰 혈관을 확보해 링거, 수액, 약을 투여할 도관을 삽입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찼다. 그래, 외과 의사를 해야 한다!
이 교수는 고된 외과 전공의를 마치고, 울릉도에 공군 레이더 부대가 창설되자 대한민국 1호 울릉도 군의관을 지냈다. 그는 군의관 시절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서 지금도 응급실의 환자를 보면 선친을 떠올리며 정성껏 대한다.
이 교수는 인천성모병원에서 대장암 복강경 수술의 세계에 들어선 뒤 당시 이 분야의 ‘마스터’로 불린 김선한 한솔병원 외과 과장(현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 김준기 성빈센트병원 교수, 최규석 경북대병원 교수 등에게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워크숍, 세미나 등을 쫓아다녔다. 잠을 자려고 자리에서 누우면 천장에 복강경 수술을 하는 수술대가 떠올랐다.
당시 인천성모병원에서는 수술을 도와줄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수술해야 했고, 환자도 많지 않아서 수술이 끝날 때마다 수술 전체를 복기하며 정리했다. 자연히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데 막힘이 없게 됐고 학회의 대선배들이 막내급인 30대의 이 교수에게 파격적으로 복강경 수술 특강을 맡기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2009년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대장암 수술의 대가 스티븐 웩스너 교수실에 연수를 갔지만 1년 만에 인천성모병원 증축에 따라 귀국해야만 했다. 이 교수의 수술 실력이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조금씩 늘어 매주 6~10명을 혼자 수술해야만 했다. 하루는 60대 환자로부터 “택시 기사에게 인천성모병원 대장암 수술받으러 간다고 했더니 기사 자신도 이윤석 교수에게 수술받았다면서 선생님 자랑을 했다”라는 말을 전해 듣기까지 했다.
2011년에는 30대 중반의 여성 환자가 밤에 직장 위 S결장이 꽉 막혀서 응급실에 실려 왔다. 내과 전공의가 도관으로 막힌 부위를 뚫고 세척하는 응급처치를 하고 난 뒤 부은 장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1주일 뒤 수술했다. 환자는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틈날 때마다 “아기를 가질 수 있냐?"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항암치료 중 피임하고 나중에 임신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다 줬다. 환자는 다음 해 아기를 안고 진료실에 들렀다.
이 교수는 2015년 타이완 대장항문학회의 초청으로 복강경 직장 수술에 대한 특강을 한 뒤 한 달에 1, 2번은 금요일 밤에 출국해서 주말에 특강하고 월요일 새벽에 귀국해서 환자들을 수술해왔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복강경학회에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했다.
이 교수는 성빈센트병원에서 서울성모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던 김준기 교수가 2017년 정년퇴임하면서 이 교수를 강력 추천한 덕에 마침내 서울로 입성했다. 수술 환자도 급증했지만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베트남 등에서 찾아오는 제자도 늘었다.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외국인 제자는 재작년 찾아온 사우디아라비아 전임의 한 명뿐이지만 많을 때에는 회진을 따라오는 외국 제자가 국내 제자보다 많을 때도 있었다.
그는 의사에게는 일상적 업무가 환자 한 명에게는 일생일대의 순간이라는 점을 가슴에 담고 환자를 대한다. 인천성모병원 재직 때부터 환자에게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해서 친절한 의사로 소문이 났었다. 그의 좌우명은 ‘치료는 최선을 다하고, 가족에게는 행복을!’이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데에도 최선을 다한다. 3, 4기가 돼 눈물 흘리는 환자들에게도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슬퍼하십니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방법을 고르고 있습니다. 미리 절망하지 마세요. 대장암, 함께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대장암은 한때 ‘서구형 암’이라고 불렸는데, 요즘 주위에 환자가 많은 것 같다.
“대장암은 이제 우리나라의 대표적 암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장암 발병률은 헝가리와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발생 대비 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조기검진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의사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돼 있는 점도 크다.”
-대장암은 혈변이 나오거나 복통이 있을 때, 배변습관이 바뀌었을 때 빨리 병원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 그런 증세가 나왔다면 벌써 많이 진행됐을 때다. 대장암도 초기 증세가 도드라지지 않아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병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겨울에 40대 남성이 치질인 줄 알고 왔는데 직장암이 앞으로는 전립선, 뒤로는 엉치뼈까지 번진 상태에서 아래로 항문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방사선 치료로 크기를 줄이고 정형외과, 비뇨기과, 성형외과 의사 등과 함께 10시간에 걸려서 방광, 전립선, 직장, 엉치뼈를 들어내고 요로와 인공항문을 만들었다. 현재 환자는 항암치료 중이지만 얼굴색이 돌아왔고 체중이 늘어서 암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불편한 삶은 어쩔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대장암이 진행할 때 대부분 증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장암도 조기검진이 열쇠인 듯한데, 국민건강검진에서는 대변잠혈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와야 대장내시경검사를 권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되는가?
“대변잠혈검사 만으로는 100% 안심할 수 없다. 검사의 민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50세부터 5년마다 한 번씩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을 권했지만, 지난해 미국 학회에서는 ‘45세부터’로 내려갔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45세부터 5년마다 한 번씩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40대부터 3년마다 한 번씩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직장암 수술을 받으면 인공항문을 달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 의대 다닐 때에는 그렇게 배웠지만 요즘에는 그렇지는 않다. 요즘에는 95%에게 항문을 보존하는 수술을 한다. 암이 항문조임근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2017년 다른 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 재발한 환자가 그 병원에서 인공항문을 달아야 한다고 해서 낙담해서 찾아왔는데, 항문을 살리면서 수술했고 지금도 재발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요즘 대장암 로봇수술이 복강경 수술을 대체하고 있다고 하던데….
“로봇수술은 수술 부위가 10~15배 확대된 3차원 영상을 보면서 540도 회전하는 로봇팔을 조정해 하는 수술이다. 2007년 국제학회에서 대장암, 직장암은 로봇수술을 피하라는 권고안을 제시했는데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김선한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가 치료법 프로토콜을 개선하고 있었고, 그것이 이제 국제 표준이 됐다. 대체로 대장암은 ‘가성비’ 좋은 복강경으로 수술하고, 직장암은 골반 부위가 좁은데다가 신경이 복잡하게 분포돼 있어 미세하고 정교한 로봇수술을 하면 좋다. 아무래도 로봇수술이 부작용, 합병증이 적고 회복시간이 짧다. 그러나 로봇수술은 아직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1000만 원대의 수술비가 부담이다.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환자에게 복강경수술로도 최선을 다해서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의사의 역할이다.”
-대장암은 어떻게 예방하나?
“건강한 생활습관이 우선이다. 음식을 골고루 먹고 1주 3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 한다. 음식은 약이 아니므로 특정음식을 고집하지 않도록 한다. 무엇보다 대장암은 2차 예방이 가능한 암이다. 거듭 말하지만 대장암은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해서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장암은 대부분 용종이 자라서 암이 된다. 대장의 여러 종류 혹 가운데 70%를 차지하는 선종성 용종이 10~15년 자라서 암이 되는 것이다.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선종성 용종을 잘 발견해 제거하기만 해도 암으로 가는 길목을 막을 수 있다.”
-대장암도 유전적 요인이 큰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전체 대장암의 10%가 유전성 대장암이다. 2017년 40대 환자를 수술했는데, 1년 뒤 어머니, 1년 뒤에는 장인이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첫 환자의 자녀는 부계, 모계 모두 해당하니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가족이 대장암 환자였다면 유전 상담과 검사를 받는 것이 좋고, 40세부터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를 권한다.”
-대장암 진단을 받으면 그래도 많은 사람이 낙담할 것 같은데….
“암은 예방이 최선이지만 암에 걸렸다고 낙담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외과 의사들의 대장암, 위암 등 소화기질환 수술성적은 세계 1위 수준이다. 치료방법이 다양하며 조합을 잘하면 3기뿐 아니라 4기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외과 의사로서 수술 원칙은 종양 부위를 완전히 절제하고 가능한 한 항문을 보존하며 성기능과 배뇨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자율신경을 보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니까, 의사를 믿고 함께 암을 이기려고 마음먹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