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혐오와 코로나19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몇 년 전, 아주 늦은 밤, 남자 셋이 응급실을 찾았다. 싸구려 점퍼와 낡은 청바지, 흙이 잔뜩 묻은 작업화의 남루한 차림과 어눌한 말투, 어색한 발음으로 미루어 외국인 노동자일 가능성이 컸다. 얼굴 생김새 자체는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중국인 혹은 몽골인이라 판단했다. 또 그들 모두가 환자는 아니었고 두 명은 환자와 동행한 보호자에 해당했다.

일단 그들을 응급실 내부로 안내하고 진료를 시작했으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어가 서툴렀고 우리 응급실에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가슴을 계속 내리쳤다. 또 술 냄새도 약간 풍겨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라 어림잡아 짐작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겪는 고된 타향살이에 취기까지 오르니 불안이 엄습했고 그러다가 과호흡을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약간은 짜증이 치밀었다. 술에 취한 한국인만으로도 응급실은 엉망일 때가 많은데 이제는 외국인 주정뱅이도 돌보아야 하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환자는 의료보험이 없었다. 심전도 같은 간단한 검사만 시행해도 적지 않은 병원비가 나올 것이며 그들이 순순히 진료비를 내지 않으면 담당 행정직원이 곤란한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이 컸다. 순순히 병원비를 내도 문제였다. 술에 취해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심전도와 흉부 X-ray 같은 검사를 시행하고 비싼 병원비를 받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런데 그때 환자가 제대로 눕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학적 검사를 위해 침대에 누이면 아주 짧은 순간도 참지 못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잠시라도 누워서는 견딜 수 없는 것만 같았다.

그때 복싱 스파링 중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몰려왔다. 나는 손짓과 발짓에 무서운 표정까지 동원하여 환자를 침대에 누이고 심전도를 시행했다. 예상대로 심전도에서 심방세동을 확인했다. 이어서 시행한 흉부 X-ray에는 폐부종이 심했다. 심방세동은 심장근육이 손상했을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부정맥이며 폐부종은 펌프처럼 혈액을 뿜어내는 심장의 기능이 저하하여 폐에 습기가 차는 증상이다. 심부전(heart failure)으로 폐부종이 발생하면 누우면 호흡곤란이 악화하고 상체를 일으켜 앉은 상태에서 다소 호전한다. 그러니 울면서 가슴을 두드린 것과 좀처럼 눕지 않으려 했던 것, 모두 심부전을 원인으로 하는 증상에 해당했다.

그래서 폐부종을 완화하려고 이뇨제를 투여한 후,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하고 입원을 처방했다. 의료보험이 없어 발생하는 경제적인 문제는 병원의 복지팀과 연결하여 해결했다. 그러면서 매우 부끄러웠다. 환자가 남루한 차림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말쑥하게 차려입은 백인이었다면 처음부터 심부전 같은 문제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인종적 편견에 휘둘리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인종적 편견, 거칠게 표현하면 ‘인종차별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인과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영화와 드라마도 그 좋은 사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중공폐렴’이란 매우 거친 단어부터 ‘우한폐렴’이란 다소 온건한 단어까지 인종차별이 섞인 단어를 여전히 많은 곳에서 마주한다. 또 그런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불과 몇 주 전에는 서울시가 모든 외국인에게 ‘코로나19 검사’를 강제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물론 주한 영국대사관을 비롯한 외국대사관이 유감을 표명하고 여론의 반응도 그리 열광적이지 않아 다행히 계획 단계에서 좌초했으나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국적, 인종, 종교, 정치사상 같은 요소를 가리지 않고 전염하니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에 우리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백인 청년이 한인업소를 습격하여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그 사건 외에도 곳곳에서 동양계 미국인을 ‘중국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코로나19를 만들었다’는 비난과 함께 폭행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우리는 그런 사건을 보며 서구의 인종차별주의를 비난하며 분노한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국가에서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같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전수검사를 강제하는 계획을 세우는 공무원은 없다. 동양인 혐오에 따른 범죄는 개인의 일탈일 뿐이며 정부기관이 인종차별적인 계획을 진행한 사례는 적어도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러니 코로나19 대유행이 깊어지는 시점에서 우리야말로 우리 가운데 있는 인종차별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에디터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1
    댓글 쓰기
    • *** 2021-04-10 15:29:05 삭제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지에서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취급하며 폭행, 갈취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접하면서 이렇게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외국에서 살고 있지 않아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코로나 초기에 우한에서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때 나 자신도 마트에서 중국인들의 대화가 들리면 멀리 피했었고 다른 외국인들하고도 가능한 접촉을 하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알게되었다.

      답글0
      공감/비공감 공감0 비공감0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