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강한 사람, 근육 유전자 다르다 (연구)
수은주가 뚝 떨어진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유독 추위를 잘 견디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근육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유전자 특성은 인류 이동의 진화적 과정에서 변이-형성된 것이며,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이 유전적 돌연변이 덕분에 추위를 잘 느끼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연구진은 추위를 잘 견디는 사람들은 체력을 지탱하는 근육 ‘ACTN3’라는 유전자 변이로 인해 낮은 기온에서도 체온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인류유전학저널(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ACTN3 유전자의 LOF(loss-of-function; 기능상실) 변이는 알파-액티닌-3(α-actinin-3)라고 불리는 골격근 단백질 결핍을 가져온다. 이 알파-액티닌-3 단백질은 근육의 수축 속도가 빠른 속근섬유(fast twitch fibre)에 존재하는데, 이 단백질이 없는 사람은 근육의 수축 속도가 느린 지근섬유(slow-twitch muscle fibre)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골격근 기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변이는 지금으로부터 5만 년도 훨씬 전, 현생 인류가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추운 유럽으로 이동할 때,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간이 지나 오늘날 전세계 약 15억 명의 사람들이 ACTN3 LOF 변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곧 알파-액티닌-3이 결핍되어 있는 대신, 지근섬유를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추위에 견디는 힘이 더 우수하다.
근육 유전자 변이가 추위 대한 내성 향상시켜
인류가 추운 기후 환경으로 이동하면서 ACTN3 LOF 변이가 많아졌기 때문에, 연구진은 이 유전자 변이가 추위에 대한 내성을 향상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ACTN3 LOF 변이 또는 ACTN3 정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18세에서 40세의 건강한 남성 42명을 대상으로 추위에 견디는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을 14°C 물에 20분 동안 앉아있게 하고 10분 동안 실온에서 휴식을 취하는 과정을 총 120분(휴식시간 포함 170분)동안 진행했다. 이 과정은 체온이 35.5°C(직장 체온)가 될 때까지 반복했다.
실험 결과, ACTN3 LOF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찬물 속에 있는 시간 내내 35.5°C 이상으로 체온을 유지한 비율이 69%에 달했다. 이에 반해 변이를 가지고 있지 않은 ACTN3 정상 유전자 그룹에선 그 비율이 30%에 그쳤다.
연구진은 근육의 단백질 함량과 섬유질 구성도 관찰했다. ACTN3 LOF 변이를 가진 사람은 지근섬유가 많아 물 속에 있는 동안 추워서 몸을 떨기보다 근긴장(근육이 수축상태를 지속하는 일)이 증가했다. 반대로 변이가 없는 사람들에게서는 속근섬유가 더 많이 발견됐다.
ACTN3 LOF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추위를 견딜 때 에너지 소비도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근섬유의 지속적인 저강도 활동성이 열을 발생시키는데 있어 에너지 효율이 더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로 인류 이동의 진화적인 측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면서 “알파-액티닌-3가 결핍된 사람들이 체내에서 효율적으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데에는 장점이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거와 의복이 잘 갖추어져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 덜 중요하게 됐고, 기본적으로 음식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높으면 오히려 비만이나 제2형 당뇨병, 기타 대사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알파-액티닌-3 결핍이 열에 대한 저항성이나 다양한 운동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젠 추위를 견디는 것을 두고 정신문제라고 하는 꼰대들이 줄어들겠군요.(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