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한다는 방역"이 두려운 까닭
[이성주 칼럼]
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방역을 고갱이에 두고 싶었던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은 너무 잘하니, 질문이 없으신가요?”라고 기자들의 질문을 이끌었고, 사회를 맡은 정만호 국민소통 수석도 방역에 대한 질문을 요청했다.
영국 BBC방송의 로라 비커 서울지국장이 “한국이 좀 더 빨리 백신을 확보했다면 좀 더 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느냐”고 질문하자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충분한 물량이 확보가 되었다”고 단언했다. “아직 협의 중이기 때문에 확정된 것이 아니고. 가능성이라고만 말씀을 드린다”는 안전장치는 달았지만. 대통령은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국민이) 긴장을 놓치지 마시고 조금만 더 이 시기를 견뎌주시고 이겨내 주시면 바로 다음 달부터는 우리가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고, 또 그에 앞서 치료제도 사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서, 말하자면 방역에서 성공을 거두고 위기를 극복하는, 그래서 일상과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백신 회사들이 백신 공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이고, 우리보다 먼저 화이자 백신을 확보한 EU에서는 최근 화이자가 물량 납품 시간을 못 맞춘다고 선언해 각국 정부가 격렬히 항의하는 상황에서 ‘가능성’이 과연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제대로 실현될지, 가슴 깊이 울리는 회의(懷疑)를 어쩔 수 없었다.
왜 대한민국의 주요 기자회견에는 외국과 달리 혜안과 지식을 갖춰 정곡을 찌르는 베테랑 기자는 없고, 젊은 기자들만 참여하는지 아쉬움과 함께, ‘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치중해서 오히려 신뢰를 해칠까?’라는, 오래 곰삭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전자는 시스템의 변화에 소극적인 언론의 탓이라고 친다면, 뒤의 의문은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면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반대편 정치세력이나 언론을 의식해야만도 하고 정책의 연속성이 깨진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힘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무오류주의’와 이른바 ‘국뽕’은 대가가 크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칼 포퍼가 갈파한 대로 정책에 대한 과감한 제시와 끊임없는 검증, 오류수정으로 발전하는데,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오류는 삶이나 정치에서 필연적인데도, 우리 모두가 현대사의 콤플렉스 탓인지, 정오(正誤) 위주의 교육 탓인지 ‘OX’의 사고 틀에 갇혀있기에 쉽게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정치·사회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언론은, 이런 현상이 투영돼서인지 다양한 정보를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판단의 준거를 제공하기보다는, 정답을 내리고 심판하려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인지, 그 근거를 자체의 합리적 논리에 두기보다는, 외부에서 찾는다.
방역 보도에서는 그런 경향이 극명하다. 지난해 3월 대구의 신천지발 1차 확산이 진정되면서 대부분의 언론은 ‘K-방역’의 극적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외국의 언론들이 극찬한다면서. 도대체 뉴욕타임스가 “세계가 IT 산업 이끄는 미국 극찬”이라는 기사를 내 거나, 르 몽드가 “유럽 각국이 프랑스의 문화 예찬”이라는 기사를 보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외국 기자들도 대한민국의 저력에 감탄하면서 기사를 썼겠지만, 본질은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는 우리 방역당국, 의료진, 시민의 사례들을 통해서 자기 정부의 정책에 준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장점들을 쓰면서도 자국에서는 반영하지 못할 근원적 한계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언론은 MERS 이후 법과 제도의 정비, 이로 인한 검사능력 및 방역시스템의 개선, 한국인의 높은 교육수준과 빨리빨리 문화, 집단정서 등을 성공요인으로 꼽으면서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시 이런 외신을 ‘극찬’으로 둔갑시키는 언론 문제를 지적하는 칼럼을 썼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우리 언론에서는 이후 대만과 뉴질랜드 등 방역성공 국가에서 우리가 참조해야 할 사항에 대한 보도는 실종에 가까웠고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왜 환자가 계속 늘고 있는지, 이를 대비할 방안에 대한 심층적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외국의 사례 가운데에서는 특히 대만을 계속 주시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가깝고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는 대만, 홍콩, 베트남, 일본 등을 비교하면 평균 정도로 방역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모범국가인 대만을 극찬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끊임없이 참고했어야 했다.
대만은 지난해 초 중국 우한에서 전염병이 퍼질 때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가장 위험한 국가로 지정한 나라다. 중국 본토에 대한 경제사회적 의존도가 강한 데다가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이 아니어서 국제사회의 공식적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WHO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WHO의 홈페이지 코로나19 통계 페이지에서 대만의 상황을 찾아볼 수 없다.
해외 다른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2340만 인구의 대만 상황을 보면, 18일 현재 862명이 감염됐고, 7명이 사망했다. 이날 해외에서 들어온 7명이 새로 확진됐다. 100만 명당 사망자는 0.3명이다. 우리는 인구가 대만의 갑절을 넘지만 7만2729명이 감염됐고 1264명이 숨졌으며 이날 389명이 확진됐다. 100만 명 당 사망자는 25명으로 대만의 80배가 넘는다.
대만의 차이잉원 정부는 전문가들에게 중책을 맡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즉시 현장에 반영했다. 특히 IT 전문가를 방역에 적극 활용한 것은 묘수였다. 우리가 대만보다 IT 산업이 많이 처지지 않았을 텐데….
중학교를 중퇴한 천재 해커 출신의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은 가능한 범위의 모든 정책을 빅 데이터 분석에 따라 시행해서 시민의 동의를 얻고 있다. 빅 데이터 분석으로 마스크 수요 변화를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마스크 정책을 펼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일부 도시에서 감염이 번져 통제 필요성이 거론되자,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대신 방역수칙을 더 잘 지켜주기를 호소했다. 대만의 수많은 빅 데이터 활용은 《미국의학협회지·JAMA》를 비롯한 각종 학술지에도 소개되고 있다.
대만은 지난 14일 입국자들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국민의 동의를 얻고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출발지의 위험도, 백신 접종 여부, 진단검사 결과와 개인의 각종 상황을 종합해서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격리 일자를 줄이거나 아예 면제한다는 것이다.
대만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강력한 방역을 실시했으며, 예외적으로 입국이 허가된 소수에게 14일 격리를 조건으로 입국시켰으며 조금씩 예외를 늘렸다. 그러다가 지구촌에서 다시 대유행이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국적, 출신지, 목적에 관계없이 입국 3영업일 전에 진단을 받게 하고, 초응급 상황에만 예외를 뒀다. 대부분의 입국자에게 14일 격리를 하다가 이번에 빅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프로그램으로 입국과 격리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천스중 위생복지부 장관은 “이 검증시스템을 계속 개선하고 백신 접종 데이터를 추가해서 다른 나라와의 상호인증에 활용하는 것이 최대 개방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선제적, 과정적 소통도 눈여겨볼 만 하다. 정부는 시민이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면, 곧바로 인정하고 이를 공개하면서 정책을 즉시 수정했다. 또 매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기자의 껄끄러운 질문에 솔직히 답했다. ‘2.2.2 원칙’을 세워 코로나에 대한 ‘거짓뉴스’가 나돌면 ‘2시간 안에, 200자를 넘지 않는 설명을 곁들인, 2장의 그림’을 배포했다. 오드리 탕은 “검열이 아닌 소통, 루머가 아닌 유머가 대국민 홍보 원칙”이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지난해 3월 해외 언론이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앞 다퉈 보도할 때 ‘극찬이 아니라 참고’인 기사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는 것, 기자들이 명심하기를 빈다”고 촉구했다가 신념이 확고한 여러 독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바이러스 변이와 변종이 나타나고 있으며, 영국에서 임상시험 조건을 무시한 백신 접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많은 과학자들이 두근두근하며 주시하고 있다. 백신이 인천항에 도착해도 이제 시작일 따름인데….
정부는 희망뿐 아니라 만약의 경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제발 “우리나라 잘하고 있다”는 국가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글로벌 시각으로 팬데믹을 대하길 빈다. 대만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과정을 철저하리만큼 참고해야 할 것이다.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수가 정한 정책이나 방역의 결과를 알리며 협조를 구하는 소통에서 벗어나, 과정으로서의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 우수한 정보통신, 의료 분야 등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더욱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데이터 분석에 따른 과학적이고 합리적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국민과 전방위적으로 소통하면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국민의 행복과 건강을 위하는 방역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바뀌면 정부가 굳이 자화자찬하지 않아도 국민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과학적 눈으로 봐서, 코로나 팬데믹은 아직 아슬아슬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은 결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스템의 체계,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원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 언론들이 외신을 인용할 때...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내용만 인용하여 왜곡 보도를 함으로써 잘못된 여론을 만드는 데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정부가 방역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 IT와 의료 분야의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지나치게 행정 관료나 정치꾼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문제점들을 잘 지적해 주시고 있는 글이군요.
대만에서 자가격리를 하루 지키지 않은 한국 관광객에게 엄청나게 많은 벌금을 매겨서 돌아오지 못했던 기사를 읽었던 것 같은데, 엄청난 벌금 부과가 방역에 큰 효과를 본 부분은 없었을까요...???
무척 공감되는 분석 글입니다. 위정자들이 좀 이런 판단과 추진을 했다면 우리도 대만처럼 일찍 코로나를 졸업하고 편하고 열정적인 일상으로 돌아갔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영 우이독경이니...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각기 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하는데 전문가들은 간데없고 왠 행시 출신 나부래기들이 눈치나 보면서 빈 짱구를 굴리려니 정책의 방향도 없고 비젼은 더 더욱 없는 쭉쟁이 대책들만 난무함. 공무원 채용 제도의 근본적 혁신이 절실함.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난다고 양극단에 너무 치우쳐지는게 안타깝습니다. 한번 깊어진 감정의 골을 메울려면 몇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국뽕/ 국까의 공통점은 국가주의인데, 집단주의나 국가주의가 너무 지나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