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의 애국심과 백신 개발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사진=Gettyimagesbank

항상 축축한 검은 색 또는 짙은 갈색의 코가 자리한 긴 주둥이, 쫑긋한 삼각형의 귀, 갈색부터 푸른색 혹은 초록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눈동자, 날카로운 송곳니가 도드라진 이빨, 입 밖으로 길게 빠져나올 때가 많은 혀, 몇몇 예외가 있지만 온몸을 덮고 있는 풍성하고 윤기 있는 털, 고양이과 동물 같은 다른 네 발 달린 맹수와 달리 긴 추격에도 쉽게 지치지 않도록 발달한 근육질 체형. 대부분은 이런 설명에 어렵지 않게 개를 떠올린다. 또 많은 사람이 이런 설명에 두려움보다 친근함을 느낀다.

고양이 애호가는 실망하겠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확실히 개는 인간에게 최고의 친구다. 고양이를 길들인 역사가 겨우 수천 년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서 개는 수만 년 전부터 인간의 곁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인이 고양이를 처음 길들였을 때부터 현대까지 그 목적이 종교적 혹은 유희적인 것과 달리 개는 인간의 생존에 실질적 도움을 줘왔기 때문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개를 사냥과 경비, 때로는 전쟁에 이용했고 현대에는 구조, 위험물 탐지, 장애인 안내 심지어 정신질환 치료에도 투입한다. 물론 개 외에도 다양한 동물을 사냥에 이용했다. 매사냥은 많은 유목민의 전통이며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은 형태의 어업도 존재한다. 그러나 개가 사냥으로 인류의 생존에 이바지한 것과 비교하면 매사냥과 가마우지 어업 모두 소소한 취미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를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순간부터 인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공포를 겪어야 했다. 바로 광견병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모든 포유류가 광견병에 걸리고 다른 개체에 옮길 수 있다. 그러나 개는 쥐, 박쥐, 여우, 늑대, 너구리 등 광견병을 옮기는 다른 동물과 달리 야생 동물이 아니라 ‘인간 무리의 일원’이라 인간에게 광견병을 옮길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래서 기원전 1950년에서 기원전 1850년 사이에 수메르인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에슈눈나 법전(law of Eshnunna)’에도 광견병에 걸린 개를 잘못 관리한 주인에 대한 처벌 조항이 있다.

그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광견병의 공포를 극복할 수 없었다. 광견병에 걸린 개는 눈에 핏발이 서고, 삼키는 기능에 문제가 생겨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여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매우 위험하고, 일단 그런 개에 물리면 뾰족한 치료법이 없어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물린 부위를 절단하거나 대장장이가 벌겋게 달군 쇠막대로 지지는 것이 치료법으로 시도됐다.

그런 상황에서 최초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치료법을 개발한 사람은 루이 파스퇴르(1822~1895)다. 이미 우유, 맥주, 와인에 널리 사용하는 저온 살균법을 개발해 생화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파스퇴르는 더 큰 명성을 쫓아 광견병 연구를 시작했다.

파스퇴르는 천연두 예방에 큰 효과를 본 종두법을 참고해서 광견병이 걸린 개에 물린 사람에게 광견병 증상이 나타나기 전 광견병 백신을 주사하면 광견병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광견병에 걸린 토끼의 신경조직(광견병 바이러스는 신경조직에 침투한다)을 햇볕에 말려서 감염성을 없앤 백신을 개발했다.

그리고 파스퇴르는 동물 실험에 겨우 성공한 단계에서 과감하게 실제 환자에게 백신을 투여했다. 다행히 다소 무모하고 위험했던 시도는 성공으로 끝나 1885년 조제프 마이스터란 9살 소년에게 광견병 백신을 투여해 성공적으로 치료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그런데 파스퇴르가 심지어 함께 연구했던 의사인 에밀 루(Emile Roux)의 반대에도 실험적인 백신의 사용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차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에서 찾아와 어떡하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매달린 어머니의 간청이 마음을 움직였을 수도 있지만, 조제프 마이스터가 알자스-로렌 지방에 살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1871년 보불전쟁에 패배한 프랑스는 프로이센(곧 독일 제국이 된다)에게 알자스-로렌 지방을 빼앗겼고 열렬한 애국자였던 파스퇴르는 이제는 독일 영토가 된 알자스-로렌 지역에서 온 소년을 치료하여 세계에 프랑스 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파스퇴르의 위험한 도박은 성공했고 광견병에 걸린 토끼의 신경조직을 이용하여 광견병 백신을 제조하는 방식은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세기 들어 더 나은 백신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파스퇴르의 광견병 백신을 접종하는 ‘파스퇴르 센터’가 1886년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를 책임자로 오데사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1909년까지 75곳에 세워졌다.

의학의 역사, 특히 백신 개발을 돌아보면 정치적 선전에 충실한 의학자는 파스퇴르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개인적 명성뿐만 아니라 국가의 영광을 목적으로 백신을 개발했고 해당 국가 역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한 오늘날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미국과 유럽 같은 민주진영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전력투구하며 경쟁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그런 민주진영에 맞서 국가적 명예를 높이려고 국가가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다만 그렇게 지나치게 과열한 경쟁이 백신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만 남기지는 않는다. 함께 연구하던 의사 에밀 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물 실험만 겨우 끝낸 광견병 백신을 9살 소년에게 접종한 파스퇴르의 결정은 결과적으로는 커다란 성공이었지만, 자칫하면 광견병 백신의 개발과 보급을 몇 년이나 늦출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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