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됐다고 희생돼야 하나?”
[이성주 칼럼] 임용고시, '미래 키팅 선생'의 눈물을 보며
지난 21일 전국에서 중등교사 임용고시 1차 시험이 조마조마하게 실시됐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집단발생하면서 혹시라도 시험장이 대규모 확산의 도화선이 될까, 정부도 국민도 걱정했다. 강원 춘천에서 시험을 치른 수험생 1명이 확진돼 이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확진 판정을 받은 수험생 67명에게 아예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했다. 졸지에 응시 기회조차 빼앗긴 수험생은 눈물을 흘리며 백방으로 구제 방법을 알아보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론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의 대유행’ 방지라는 절체절명의 명제 속에서 피치 못할 희생양으로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왜 이들이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이들은 죄인이 아니다. 대부분 고시원 쪽방에서 기거하며 추운 날씨에 길거리 컵 밥을 먹으며 교사의 꿈을 키워오다가 불운하게 감염병에 걸린 환자일 뿐이다.
중등교사 임용고시는 사범대를 졸업했거나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만이 응시할 수가 있다. 이런 인재들끼리 해마다 10대1이 넘는 경쟁을 벌인다. 이번에는 경쟁률이 8.79대1로 떨어졌지만 6200여명이 교사의 꿈을 위해 도전했다. 이들은 독특한 임용고시에 미래를 걸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취업하기도 힘들다.
임용고시는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해도 합격하기 힘들기에, 노량진 학원에서 10개월에 2000만 원 이상 들여 시험을 준비한다. 집안 사정이 넉넉한 사람에게는 큰돈이 아니겠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인생을 거는 금액이다. 이번에 시험 기회조차 박탈당한 수험생 중에는 수험 기간에 준비에 몰두하려고 1년 동안 힘들게 돈을 벌었던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의 사정이 불쌍하니까 봐달라는 게 아니다. 이들 가운데 혹시 코로나19에 걸릴까봐 식당 출입을 삼간 이들도 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의 골키퍼 조현우가 출국부터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손을 씻으며 조심했어도 코로나19에 걸렸듯, 개인의 노력은 감염 확률을 줄일 수는 있어도 100% 막을 수가 없다.
이런 만약의 희생양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당 의원조차 나섰지만, 정부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았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지난달 코로나19 확진자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당시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시험 방역관리 안내’에 따라 확진자 응시 불허가 적법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박 의원에게 “시험장에서의 응시 불가일 뿐, 병원이나 생활치료소에서 시험 허가 여부는 주관부서가 결정할 문제”라고 답변했다. ‘확진자 응시 불허’ 조치는 근거가 불분명했지만, 관련 부처에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박 의원과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진자의 시험 응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오히려 감염 사실을 숨겨 방역의 빈틈이 될 수 있다고 시험 응시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지만, 관련 부처는 오불관언이었다. 이 때문에 똑같이 코로나19에 감염돼도 대입 수능생은 병원에서 시험 칠 수 있고,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인생 계획이 흐트러지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채 시험을 치고 나중에 확진 판정을 받은 수험생과의 형평성 문제까지 생겼다.
이번 일은 사실 공무원 중 누군가가 ‘시민의 봉사자’라는 소명만 가졌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 행안부, 인사처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이번 시험 전에 확진자는 응시가 불가능하다고 고지했다”며 문제가 없다고 변명하고 있는데, 그 공지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이번에 시험을 보지 못한 수험생들은 공지가 뜰 때 자신이 거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조심조심하다가 덜컥 감염된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확진자를 지정 병원에서 시험을 치게 원칙을 세우고 이를 공지한 뒤 실행하는 게 상식이다. 물론, 공무원들의 일거리는 늘었을 것이지만 이게 순리다.
공무원 시험 사태를 보면서, 정부의 방역에 대한 태도에 의문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에 아슬아슬 선전하고 있는 것은 지난 정부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통 속에서 만든 법령·시스템 위에서 이번 정부 방역 공무원들이 몸을 아까지 않은 실행력을 보여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의료인들의 봉사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선한 시민들의 희생적 협력 덕분에 가능한 것 아닌가?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면서 정부가 통제와 처벌에 익숙해져, 공공선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우리 시민들을 관리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 된다. 정부는 관리감독의 권력을 가진 채, 환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아닌가? 필자의 잠깐 옥생각일 뿐, 결코 아니기를 빈다.
무엇보다 이 정부는 소수 인권의 중요성을 줄곧 주장해왔는데 공공선이란 대명제 아래 막을 수 있는, 소수의 희생양을 만들면 그야말로 자가당착일 것이다.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공공선은 전체주의에서나 어울리지 민주주의에서는 어울리지 않기에.
방역뿐 아니라 인사와 교육도 ‘사람 우선’에서 시작하는 데 이 원리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에 힘들게 시험을 준비하다 야속하게 코로나19에 걸린 젊은이 가운데 미래의 페스탈로치나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인사혁신처, 교육부, 행정안전부는 미래의 키팅 선생을 살리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을 구제하고 새 지침을 세우는 것은 코로나19 방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면서 정부가 통제와 처벌에 익숙해져, 공공선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우리 시민들을 관리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 된다'는 말씀 정말 공감이 됩니다.
영혼 없는 공무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소수의 인권을 중시하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정확히는 소수의 약자의 인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