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 태아… “어디부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현재까지 연구들을 보면 과학자들은 인간의 생명은 최대 120세로 보고 있다. 물론 이 가설은 우리가 한 생명체로서 살 수 있다는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기억력상실, 신체운동능력 상실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나이에 따른 신체적 변화 혹은 사고로 인한 신체손실을 교정하기 위하여 6백만불의 사나이와 같이 신체의 일부분만 기계로 바꾸거나 로보캅과 같이 두뇌는 유지하면서 모든 신체를 기계로 바꾸어 신체적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고, 이에 더 나아가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 소령과 같이 뇌의 일부분 혹은 상당부분을 기계화하는 전뇌(電腦)화를 통해 특별한 외부 단말기 없이 인터넷을 비롯한 네트워크 세계와 바로 접속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해커는 타인의 뇌에 침투하여 가상기억을 심어주거나 타인의 자아를 완전히 지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디부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전뇌화한 사람이 해킹당하여 자신의 의식을 완전히 잃고 해커의 조정에 따르게 되면 이 사람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정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고하면서 인공신체에 들어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소프트웨어를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역으로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탄생된 복제인간은 인간으로 대접받아야 하는가?
인간을 신체와 영혼으로 나누는 것은 데카르트라는 철학자의 대표적인 심신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통해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가 존재를 의미하는 관계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와는 완전히 독립된 유이한 존재로서 서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논리아래서는 생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은 비록 인간의 신체가 없더라도 인간으로 대접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을 어디서부터 인간으로 대접하고 존중하여야 하는지는 영화에서 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앞서 ‘공각기동대’라는 영화에서 쿠사나기 소령은 전뇌화와 인공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뇌를 일부라도 가지고 있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같은 영화에서 인형사라는 인공지능 혹은 소프트웨어는 인공신체를 가지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의 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에서 레플리칸트는 인간과 같은 뇌를 가지고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인조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았다.
영화 스타워즈의 제국의 ‘클론’전사들은 인간인가? 아니면 단지 싸우는 기계에 불과한가? 인간이라면 이들이 전쟁에 참여할 권리도 인정받아야 하는가? 2005년 영화 ‘아일랜드’에서 실제적 인간의 장기이식을 위해 태어난 복제인간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에게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대접하여야 하는가?
이런 인간의 가장자리가 어디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은 과학생명기술이 매우 발달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낙태 위헌결정 후 정치권에서는 낙태허용 및 시기제한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낙태 허용을 24주로 제한하는 것이고 이보다 더 나아가 낙태시기를 제한하지 않는 것도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24주가 지나면 태아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고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24주가 된 태아를 낙태하였는데 아이가 숨을 쉬고 운다면 이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의 의료기술은 24주정도의 조산으로 태어난 미숙아를 건강하게 살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설정하면 다음과 같다. OO대학병원 산부인과 1, 2 수술실에서 24주 태아가 동시에 태어났는데 한 방의 미숙아는 살리기 위하여 인큐베이터에 넣고 전문의료진이 성심을 다해 치료하는 반면 다른 방의 미숙아는 생명이 다하도록 그대로 놔 두거나 혹은 생명이 빨리 소진되도록 특정 약이나 행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누군가 아이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이 옳은가? 산모의 자기결정권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지난 4월 강간당해 임신한 34주된 2.1kg 태아를 산모의 요구로 산부인과전문의 Y는 제왕절개 방법으로 낙태를 시행하고, 태아는 미리 준비된 양동이의 물에 빠뜨려 사망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산모가 미성년자이고 강간당해 임신했지만, 출생한지 얼마 안 된 미숙아라고 하더라도 생명은 존엄하고 고귀한 것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 따르면 임신 22주 내외까지만 산모의 자기결정권행사가 보장된다고 하였기 때문에 34주된 태아를 낙태한 의사 Y에게 살인죄로 징역 3년 6개월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였다.
여러분은 위 재판부의 판결에 동의하는가? 의견은 어떠한 지 댓글로 남겨 주기 바란다.
역학(易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임신 24주는 적절한 조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옛날 자연분만으로 칠삭동이가 존재했지만 육삭동이는 불가했던 것을 보더라도 임신6개월째 이후부터 자가호흡에 의한 생존이 가능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역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은 목,화,토,금,수 오행(五行)이 갖추어지면 인격체를 지닌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 영혼이 태아에게 들어간다고 봅니다. 오행은 인체의 장기나 팔다리 같은 생체기관들이 형성되면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미완의 상태인 임신6개월까지는 진정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체 자체에 인간성을 부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또다른 별개의 논의가 되겠습니다만.. 역학에서 말하는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조건인 오행이 갖추어져서 영혼이 들어갔느냐를 기준으로 보면, 인공지능이나 사이보그는 오행이 들어가지않아 영혼이 자리하지 못하므로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복제인간의 경우는 복제일지라도 장기와 생체기관이 완성되면 오행이 자리잡아 영혼이 들어가므로 인간으로 규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학의 기준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인데, 이런 논의는 의학적,과학적 개념만 고집할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개념도 포괄적으로 살펴봐야 하겠지요.
3주만에 심장이 뛴다고 하니 사실은 수정때 부터다
3주만에 심장이 뛴다거 하니 사실은 수정때 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