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정의감에 환자 비밀 언론사 제보하면?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의료인은 진료 중 알게 된 환자의 과거 사실에 대해 엄격히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공익을 이유로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언론이나 기타 사인에게 노출해 국민의 알권리를 채우는 것보다 개개인 환자의 비밀보호가 우선한다.
그러나 이전 사건을 보면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공익적 이유로 특정 환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환자의 민감의료정보를 열람하고 그 내용을 언론에 제보하는 대신 검찰과 같은 공공기관에 수사를 요청하며 넘겼다면 이런 행위는 공익 관점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직무상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하였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할까?
최근 이에 대한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2017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 A교수가 8명의 환자들에게 대리수술을 시키고, 이를 직접 집도한 것처럼 진료기록부에 허위사실을 작성하는 것을 본 전공의 B는 다른 전공의들과 함께 한 환자의 사흘치 수술기록지를 열람하고 그 사본을 검찰에 제출했다. 그런데 자신의 의료정보가 유출된 피해당사자인 C가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전공의 B를 고소했다. 쟁점은 전공의 B가 환자 C의 개인정보유출과 관련, 의료법의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했는지, 아니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는지, 또 해당 전공의를 공익신고자로 인정해야 하는지 등이다.
전공의 B는 자신은 해당교수의 불법적 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거만 검찰에 제출했고, 수사기관 외에는 의무기록을 열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공익신고자에 해당하므로 직무상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며 책임도 감면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전공의 B가 공익신고자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를 처리의 허용된 권한을 초과해 환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적용대상이 아니고, 비록 전공의가 수술기록지를 전달한 상대방이 검찰인 공공기관이라도 하더라도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의무기록제출만이 유일한 고발방법은 아니었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벌금 50만원의 선고유예(법원이 경미한 범인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를 결정했다.
의료법위반에 대하여는 환자정보유출 후 6개월 안에 고소하지 않아 시간이 지났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수술실 간호기록지 등 의료기록이 대리수술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이고, 전공의의 입장에서는 담당교수의 의료법 위반혐의를 입증할 만한 다른 적법한 수단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의료기록을 첨부하지 않고 고발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해당자료가 나중에 수사기관에 제공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 사건에서 개인의 의무기록이 유출되어 침해된 법익보다 대리수술을 방지함으로써 보호되는 사람들의 생명과 신체에 관한 법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전공의들의 행위가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타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면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현재 환자의 동의없이 비밀을 공개할 수 있는 경우는 법원의 명령이나 에이즈와 같은 법정전염병 환자,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과 같이 법률상 신고의무가 부가된 때에 한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제3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것이 명확한 때처럼 공익적 경우에 한하여만 의무위반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때에도 당국에만 신고의무가 있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 전공의들의 사례는 제3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피해갈 갈 것이 예상될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환자의 민감의료정보를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행위는 법전체의 정신이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정당행위로 보아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판결이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의료인은 노숙자든, 전직 대통령이든, 대기업오너 등 그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가능한 진료상 비밀인 환자의 개인의료정보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만약 공공에 이익이 된다고 할 때라도 검찰과 같은 공공기관에 수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의사가 정의감에 사로잡혀 개인의 의료정보를 언론사에 제보하면 불법행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