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부작용, 1976년 미국과 2020년 대한민국
[Dr.곽경훈의 세상보기]
Ⅰ
처음 증상은 대수롭지 않다. 양쪽 발이 저리고 따끔거려 대부분은 발에 맞지 않는 신발, 오랜만에 시작한 운동이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통제를 복용하거나 얼음찜질을 선택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증상은 호전하지 않는다. 발뿐만 아니라 종아리가 저리고 아프면서 둔해지고 아직 걸을 수 있으나 예전과 달리 쉽게 넘어진다. 양쪽 다리 모두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허리 문제, 그러니까 요추의 문제라 생각하고 병원을 찾는다. 적지 않은 의사도 환자의 추정에 동의하여 X-ray 같은 영상의학 검사를 시행한다. 그러나 검사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고 환자의 증상은 한층 악화하여 허벅지까지 통증, 저림, 근력 저하가 발생한다. 이제는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이라 요추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고려한다. 뇌출혈 혹은 뇌경색 같은 질환을 의심할 수 있지만 환자의 증상은 거기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도 정형외과 문제가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해서 내과가 진단에 참여한다.
내과는 갑상선 질환 혹은 저칼륨마비(hypokalemic paralysis: 혈액 내 칼륨 수치가 감소하여 사지의 말단 부위가 마비되는 병)를 의심하지만 갑상선 호르몬과 혈중 칼륨 농도 같은 검사 결과는 대부분 정상 범위다. 환자의 증세는 더욱 악화해서 혈압이 지나치게 올랐다가 또 너무 내려가고 심한 소화불량이 발생하면서 때때로 부정맥이 찾아온다. 발부터 시작한 근력 저하는 더욱 악화하여 횡경막을 비롯한 호흡근육까지 침범한다. 내과는 희귀한 감염병의 가능성을 고려하지만 백혈구 수치를 비롯하여 감염일 때 증가하는 검사 수치 역시 대부분 정상 범위다.
환자만큼 절박한 상황에 몰린 의사는 뇌염이 원인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요추천자를 시도한다. 인간의 뇌는 두개골과 단단한 막이 둘러싸고 액체로 가득한 밀폐 공간에 떠 있는 두부와 비슷하다. 따라서 감염이 발생하면 그 공간에 있는 액체, 그러니까 뇌척수액에 이상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두개골을 뚫고 바늘을 꽂아 뇌척수액을 채취할 수는 없으나 다행히 척수가 자리한 공간에도 같은 액체가 흘러 요추에 바늘을 삽입해서 뇌척수액을 채취하면 뇌염을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단백질 수치가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이상이 없다.
이 무렵이면 환자의 상태는 매우 악화해서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하다. 질병의 실체를 알 수 없으니 의사가 제공할 수 있는 치료도 제한적이다. 혈압이 감소하면 승압제를 사용하고 지나치게 증가하면 고혈압 약을 투여한다. 호흡곤란이 심하면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여전히 호소하는 통증에는 다양한 진통제를 처방한다. 그렇게 치료하면 놀랍게도 대부분은 점차 저절로 증상이 호전한다. 다만 100명 가운데 3명쯤은 사망한다. 또 100명 가운데 20명 정도는 근력저하 같은 후유증이 남고 가운데 10명은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심각하다.
환자, 보호자, 의사 모두를 두렵고 당혹스럽게 하는 이 질환의 이름은 길랭-바레 증후군( Guillain-Barré syndrome)이다.
인체의 면역이 세균 혹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체의 주요 기관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에 해당하는 길랭-바레 증후군은 감기와 장염 같은 감염병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항체가 신경조직을 공격하여 발생한다. 전형적인 경우, 증상이 나타나기 3주 전에 감기 혹은 장염 같은 질환을 가볍게 앓고 발부터 시작하여 점차 위쪽으로 진행하는 근력 저하와 마비가 특정적이며 4주 이내(대부분은 2-3주 무렵)에 증상이 최악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대부분은 저절로 회복하나 인공호흡기 치료 같은 적절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지 못하면 아주 위험하다.
그런데 아주 드물지도 않으나 그렇다고 아주 흔하지도 않은 이 질환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1976년 겨울 미국에서 갑작스레 길랭-바레 증후군의 환자 숫자가 치솟았고 환자 대부분에서 독감 백신을 접종한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Ⅱ
1918년 인류는 수천만 명이 사망하는 스페인 독감의 악몽을 경험했다. 20세기 중반 무렵 독감 백신을 개발했지만 1957년 새로운 독감의 대유행이 미국에 닥쳤을 때는 너무 늦게 백신을 접종해서 집단면역을 얻지 못했다. 다행히 1968년 홍콩 독감에서는 늦지 않게 대규모의 백신을 접종하여 고무적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1976년 초 의학계는 다시 새로운 독감의 대유행을 예고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유례없는 대규모 백신 접종에 나섰다. 절정에 도달했을 때는 1주에 600만 회를 접종했고 최종적으로 4000만 명을 접종했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접종을 중단했다.
야심찬 대규모 백신 접종 계획을 갑작스레 중단한 이유는 접종이 진행할수록 길랭-바레 증후군이 예외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소 50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25명은 사망했다. 더구나 역학 조사 결과 접종하지 않은 집단에서 발생하는 길랭-바레 증후군은 예년과 숫자가 비슷했으나 접종한 집단에서는 확실히 비정상적으로 많았고 접종하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환자의 숫자도 증가해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인과 관계가 성립했다. 그래서 정부는 야심찬 접종 계획을 중단했고 그와 함께 길랭-바레 증후군의 발생도 점차 감소하여 예년으로 돌아갔다.
앞서 말했듯 길랭-바레 증후군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만들어진 항체가 신경조직을 공격하는 병이어서 감기와 장염 같은 감염병의 후유증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독감 백신의 부작용에도 해당한다. 그래서 백신 접종 후 전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1976년 돼지독감 백신은 스페인 독감의 악몽에 놀란 정부가 졸속으로 개발했고 안정성을 검증하지 않은 상태로 대규모로 접종해서 ‘길랭-바레 증후군의 재앙적 발생’이란 쓰라린 결과를 낳았다. 그뿐만 아니라 1976년 돼지독감 백신의 재앙은 백신 반대론자가 음모론을 펼치면서 공중 보건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계기를 제공했다.
4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흐른 오늘, 우리도 독감 백신을 둘러싼 공포를 마주했다. 백신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접종 후 사망한 사례를 언론이 보도하면서 공포가 커졌다. 여기까지는 길랭-바레 증후군이 급속히 증가한 1976년 미국과 비슷하다. 1976년 미국에서는 예방의학자를 비롯한 전문가가 ‘백신과 길랭-바레 증후군이 인과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에는 전문가가 ‘백신과 사망 사례는 인과 관계가 없다’고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공포가 드리운다. 그리고 그 공포를 먹이 삼아 음모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백신 반대론자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앞으로 있을 COVID-19 백신 접종에도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닥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언론, 전문가 그리고 대중 모두 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백신 운송차의 문제 때문에 백신의 위험성이 부풀려진 면이 많습니다. 방역당국, 정부가 투명하게 운영하고 잘못은 인정하고 수정하면 될일을 어렵게 간 것 같습니다.
언론 보도의 시작이 되었던 17살 고등학생은 사실상 아질산염이 다량 위에서 발견됨에 따라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이 났는데... 백신 음모론자들이 활개칠까봐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