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잉카 문명은 '바이러스'와 함께 사라졌다
인류 역사상 올해처럼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졌던 해도 드물다. 하지만 사실상 바이러스는 인류사의 중대한 사건 때마다 등장해왔다.
바이러스는 이미 인간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고,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로마제국부터 마야 문명까지 멸망으로 몰아간 천연두
지금처럼 미생물학과 의학이 발전하기 전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흑사병(페스트)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간 무서운 감염병이지만, 당시에는 이 질병이 하늘의 행성 배열과 나쁜 기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 등이 16세기에 멸망한 것도 전쟁의 힘보다는 바이러스의 파괴력이 더욱 막강했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과총 회장 겸 서울국제포럼 회장인 김명자 박사는 서울대 의대 코로나19 과학위원회 웨비나에서 "16세기 문명사회에 천연두가 널리 퍼졌다"며 "감염병이 돌 때는 여러 종류가 섞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황열병 등도 문명이 사라지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김명자 박사는 전 환경부장관이자, 대학에서 과학사를 강연한 이력 등 문명사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표적인 전문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도 바이러스가 그곳에 함께 도착했다. 김명자 박사는 "당시 신대륙 거주자들은 이러한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어 감염병으로 죽어나갔다"며 "문명의 소멸은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5세의 미라 분석 결과에서는 천연두 자국이 확인됐다. 로마 제국의 멸망도 천연두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엘리자베스 1세도 천연두로 인한 얼굴 흉터가 남았으니 왕실 역시도 천연두의 영향력을 피해가지 못했다.
역병이 돌며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한 일화도 존재한다. 1665년 런던에서 흑사병이 대유행하면서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휴교하자, 뉴턴은 집으로 돌아와 격리 생활을 하며 이 시기 이어나간 연구를 통해 과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세계대전 때 미국서 유럽으로 확산된 스페인 독감
전염병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진 건 1800년대다.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현재는 감염경로와 공간의 중요성을 다들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 영국 런던 브로드 스트리트에서 사람들이 콜레라로 죽어나가던 때만해도 이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다. 당시 의사였던 존 스노우 박사가 콜레라 사망자들의 집을 지도에 표시하며, '전염병 맵핑'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전염병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론을 세우는 효시가 됐다. 그 전까지는 우주의 나쁜 기운, 공기의 영향 등이 전염병의 원인으로 설명됐지만, 스노우 박사의 맵핑을 통해 하수 처리가 제대로 안 된 오염된 물을 먹은 사람들에게 감염병이 발생했고, 해당 공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사망자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 정립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실수는 반복된다. 1900년대 초 전 세계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팬데믹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명자 박사는 "당시 군대파병으로 대륙을 서로 오가고, 배로 이동하는 중에 바이러스가 퍼져 배안에서 많은 군인들이 사망하기도 했다"며 "결국 전쟁 탓에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률은 어린아이들과 노년층이 많이 사망하는 일반적인 U자 곡선이 아닌, 젊은층의 사망률이 높은 W자 곡선을 그린다. 이는 전쟁에 참여한 젊은 연령대에서 사이토카인 폭풍 등의 영향으로 대거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 독감의 최초 발생지는 미국이다.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독감 바이러스가 퍼졌다. 스페인에는 뒤늦게 바이러스가 번졌는데, 당시 전쟁의 양 진영은 전시 보도가 통제돼 독감 확산에 대한 보도가 어려웠지만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은 보도를 통해 독감 확산을 알렸고, 억울하게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결국 우리는 런던 콜레라 사건을 통해 전염병 확산에 공간이 미치는 영향, 감염경로를 이해하고 확산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됐지만 바이러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여러 차례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기후변화·생태계 파괴 등으로 등장한 新바이러스
21세기 가장 우려되는 감염병 중 하나인 조류독감은 인구 밀도가 높고 산업화가 진행 중인 아시아에서 특히 위험도가 높다. 조류에서 돼지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숙주 삼아 옮겨와 변이를 일으키고, 치료제가 등장해도 내성이 생기는 등 바이러스 역시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19처럼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기도 하고, 매몰돼있던 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한다.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가 변화하고 있는데, 기온이 오르면서 모기 서식지는 북반구로 올라가고 있다. 선진국들이 말라리아 퇴치에 나서고 있지만, 모기 서식지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기온 변화로 고온에 적응하는 변종들도 늘고 있다. 또한, 기온 상승으로 해빙에 매몰돼있던 바이러스가 등장해 탄저병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생태계 파괴로,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어 목축지, 농가, 주거지역 등으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고, 이로 인해 현재 인수공통전염병만 200여 종에 이른다. 기후 변화로 곰팡이가 과잉 증식하며 호흡기 질환이나 아토피 질환도 증가하고 있다.
결국 의학이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행동 때문에 전염병은 인류와 계속 공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직면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생각해야 할 때, 이처럼 인류사를 함께 해온 바이러스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구 환경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 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김명자 박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라며 "팬데믹에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국제 협력이 중요하고, 실업난 등으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대응하고, 빅브라더의 등장 가능성에 압도되지 말고 시민사회가 디지털과 네트워킹을 잘 활용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균형을 잡아가나는 것 등이 바이러스와 함께 하는 인류 사회의 과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어떻게 마무리 될까? 전문가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절성 유행병이나 풍토병이 될 가능성, 2차 파동이 가을 이후 크게 왔다가 결국 소멸할 가능성 등을 예측하고 있다. 소멸하는 형태가 더 바람직하겠지만 예측은 어렵다. 따라서 예측보다 중요한 건 인류사에서 바이러스와 감염병이 출현할 때 인간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이 상황을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어떠한 학제적 연구를 지속해야 할지, 또 정치성과 포퓰리즘 정책에 좌우되기보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등을 숙제 삼아 판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