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성모병원, 코로나19 장기폐쇄때 어떤 일이?
개원 한 돌, 내상 떨치고 재도약 ‘안간힘’
서울 북서부 최대 규모 병원인 은평성모병원이 11일 개원 한 돌을 맞는다. 이 병원은 코로나19 때 국내외에 모범이 될 만한 대처를 했지만, 무려 17일 동안 환자를 받지 못해서 큰 내상을 입었다. 의료계에서는 지역거점 의료의 붕괴를 우려해서 조속한 진료재개를 요청했고 방역 당국도 비슷한 목소리였지만, 서울시 판단에 따라 장기간 진료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은평성모병원은 원내 접촉 감염이 2명에 불과했지만, 지역에서 감염된 확진자를 포함한 탓에 전체 14명이 감염된 것으로 통계에 잡혀있다. 또 서울 강남구의 확진자가 보건소에서 빨리 검사를 받기 위해서 “은평성모병원에 다녀왔다”고 거짓말한 것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전 잔상(殘像)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내외에 대처방안을 자문할 만큼 성공적 방역이었지만, 상당수 국민의 뇌리에 ‘코로나 병원’으로 각인된 것이다.
권순용 병원장(사진)은 “위기 속에서도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환자들이 병원의 노력을 알고 찾아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은평성모병원이 개원 후 9개월 남짓 순항한 것처럼 위기를 디딤돌 삼아 재도약할 수 있을지,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다.
은평성모병원은 은평구 50만 명을 비롯해서 서울 북서지역, 고양시, 파주시 일대의 주민 등 150만 명을 담당하는 거점병원이다. 방사선 암 치료기 트루빔, 4세대 다빈치 수술로봇 등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여러 의사가 환자를 함께 진료하는 다학제 협진, 원데이·원스톱 진료, 중증 환자 신속 진료 등의 시스템으로 9개월 만에 하루 진료 3000명, 입원 환자 700명, 수술 100건의 실적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그러나 2월 21일 환자 이송업무를 담당하던 협력업체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악몽’이 찾아왔다. 이튿날 입원 환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곧바로 서울시에서는 병원 폐쇄 결정을 내렸다. 다음날 자정 경 은평성모병원에서 활동한 중국인 간병인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병원은 첫 확진자가 나온 뒤 즉각적 방역대책에 들어갔다. 오전 2시부터 응급실과 외래 전체를 폐쇄하고 병원 전체에 대한 방역을 실시했다. 병원장은 방역대책반 상황실을 가동하고 회의실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이며 방역 대책을 지휘했다. 또 병원은 사흘 동안 직원과 입원 환자 2,725명에 대한 PCR 검사를 시행했고, 전원 음성 결과가 나왔다. 다른 지역에서 은평성모병원을 다녀온 확진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인지 서울시 대응반에서는 아직 이 사실을 발표하지 말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환자와 주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발표했다.
병원은 “지역 거점병원인데다가 음압병실 7개가 비어있으므로 진료 재개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루 160~200명 정도가 이용하는 응급실이 멈추고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 신장병 투석환자, 심장병 환자 등이 이용을 하지 못해 환자의 생명이 위중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의료계 "지역 거점병원 조속히 문열게 하라"
수많은 의료 및 방역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위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병원의 정상적 기능이 마비돼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서울시 방역 책임자는 요지부동이었다.
대한의사협회장과 대한병원협회장이 현장을 점검하고 각각 성명을 발표해서 즉각 폐쇄를 풀 라고 요구했다. 서울시에서 반응이 없자 의협과 병협은 3월3일 보건당국자를 초청해 합동회의를 열고 은평성모병원 진료재개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과학검증위원장은 “의료기관 폐쇄 조치에 대해서는 관할 보건소 및 지자체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기준이 개정돼야 한다”면서 “상급종합병원은 감염관리 관련 내부 역량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이기일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은평성모병원은 재개원 준비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진료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은평성모병원에 대한 폐쇄조지 행정명령서가 폐쇄 열흘이 지난 3월2일 내려 보낸 것으로 드러나서 의료계가 술렁이기도 했다.
이날 뒤이어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이강일 중앙사고수습본부 의료체계관리반장 등과 임영진 대한병원협회회장,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도 열렸다. 보건당국에서는 은평성모병원의 빠른 진료재개를 약속했다. 두 모임 모두 서울시 관계자를 초청했지만,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기일 국장은 의협과 병협 합동회의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이 자리에 왔으면 빠른 행정조치를 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4일에는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도 브리핑을 통해 “은평성모병원은 추가 확진 환자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개원을 준비 중”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서울시 보건당국에서는 은평성모병원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백주 시민건강국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환자가 마스크도 안 쓰고 병원을 돌아다녔다”면서 진료 재개를 허용할 의향이 없음을 내비쳤다.
서울시에서는 역학조사단 35명을 파견해서 17일 동안 원내에서 ‘역학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병원 진료 재개할 때 음악회를 근사하게 열자”고 제안해서 일부 병원 직원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임산부 출산 비상작전 펼치기도
병원의 17일 동안 노력은 눈물겨웠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다른 병원에 소개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지만, 다른 병원으로부터 “곤란한데…”라는 응답을 들으며 가슴이 타들어갔다. 특히 양수파열로 입원한 임부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없어 비상이 걸렸다. 일부 병원에서 받아주려고 했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이 받으면 안 된다고 막는다”며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첫 입원 6일 만에 은평성모병원에서 가까스로 아기를 낳았다. 병원으로서는 보건복지부가 서둘러 전화 진료와 처방을 허용해 준 것이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병원 측은 병원 전면 폐쇄와 해제 등 각 상황에 맞는 200페이지에 이르는 매뉴얼을 작성하며 방역을 추진했고, 이는 나중에 원내 집단감염이 생긴 분당제생병원, 의정부성모병원의 ‘참고서’가 됐다. 세계적으로도 성공사례여서 외교부를 통해서 남미 국가들에게 보내지기도 했다.
은평성모병원은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신속히 관련규정을 만든 덕분에, 서울시로부터 진료재개 허락을 받고 9일부터 2주 동안 점진적으로 병원을 열었다. 재진료에 협조적이었던 복지부는 이번에도 포괄적 보상을 약속해서 병원의 걱정을 덜어줬지만 3년을 준비해서 개원했고, 1년 동안 쌓아올린 이미지의 실추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메르스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3년 이상 걸렸고, 당시 꺾인 상승세가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권순용 원장은 “개원 한 돌을 맞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면서 “각막질환 김만수, 간질환 김동구, 신장이식 최범순, 대장암 김형진, 척추경추질환 홍재택 교수 등 수술 잘하는 명의들 중심으로 병원을 재도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에서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 병원의 노력에 대해 환자들과 지역사회에서 격려해주고 있어 병원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비상(飛上)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