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삶을 택한 '왼손의 피아니스트'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12호 (2020-05-11일자)
도전하는 삶을 택한 '왼손의 비르투오소'
1887년 오늘(5월11일) 오스트리아 빈의 ‘철강 부호’ 비트겐슈타인 가문에서 넷째 아들 파울이 태어납니다. 음악을 사랑한 집안에선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음악가들의 향연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문의 5남3녀 모두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며 파울은 피아노를 쳤습니다. 파울의 동생 루트비히는 경제학자 J. M. 케인스가 ‘신’이라고 불렀던 철학자로, 그 역시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으며 교향곡을 휘파람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파울은 26세 때 데뷔해서 호평을 받았지만, 이듬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병대 소위로 참전합니다. 작전 중 오른팔에 중상을 입고 절단 수술을 받았고, 조국이 전쟁에서 패하자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수감됩니다.
파울은 가문의 재산으로 평온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피아니스트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피아니스트에게 한 손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는 나무 상자를 피아노 삼아 왼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상상의 연주 연습을 합니다. 중립국 덴마크에서 감시관으로 파견된 외교관이 이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진짜 피아노로 연습토록 알선합니다.
파울은 석방 뒤에 최고의 작곡가들에게 왼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 또는 편곡을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볼레로’로 유명한 모리스 라벨이 파울을 위해 작곡한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은 지금 양손을 쓰는 피아니스트들도 즐겨 연주하는 명곡이 됐지요. ‘왼손의 비르투오소’란 칭송을 받던 파울은 유대인을 탄압하던 나치 독일에 쫓겨 미국으로 망명했고 뉴욕에서 숨을 거둡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자이기 때문에 장애도 이길 수 있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의 세 형은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동생도 자살의 유혹을 이겨내고, 《논리철학논고》와 《철학탐구》라는 인류의 유산을 남깁니다. 어떤 사람은 비트겐슈타인 가문이 나치에 7조원 이상의 재산을 빼앗겨 재산으로는 '몰락한 가문'이지만, 철학과 음악에서 큰 족적을 남겨 로스차일드 가문 이상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역경은 부자나 빈자나 모두에게 닥칠 겁니다. 누가 한쪽 팔을 잃었을 때,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기로 결심할 수 있을까요? 파울에게 그 결심이 없었다면, 잿빛 구름 아래에서 살다가 고통스럽게 떠났을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떤 고난이 닥쳐도 이겨낼 꿈이 있겠지요? 오늘, 그 꿈을 다시 한 번 다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음악을 감상하시면서….
오늘의 음악
파울 비트겐슈타인이 연주하는 흑백 영상 몇 개가 남아있네요. 첫 곡은 요제프 요하임 라프의 ‘실 잣는 여인’ 연주실황 준비했습니다. 둘째 곡은 공연실황 대신 전곡 준비했습니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입니다. 한 손으로 쳐도 대가의 내공이 느껴지는지요?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해도 안보이면 코메디닷컴 원문 사이트에서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베닥] 대장질환 베스트닥터 유창식 교수
대장질환 베스트닥터로는 서울아산병원 외과 유창식 교수가 선정됐습니다.
유 교수는 대장암 수술뿐 아니라 크론병, 궤양성대장염 등 염증성 장질환의 권위자입니다. 의대 본과4학년 때 생사를 오가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환자 처지의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산병원 암병원장으로 있으면서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한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협진진료를 확산시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