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
[박창범의 닥터To닥터]
2018년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던 환자가 쇼크를 일으켰다. 벌 독으로 인해 알레르기 반응이 몸 전체에 급격하게 일어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였다. 옆 개원의 가정의학과 의사가 선의로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 환자는 심정지로 사망했다. 환자 유가족은 한의사와 함께 응급처치를 한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안 왔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왔다면 적정시간 내에 응급처치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사건은 응급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었거나 사망한 경우 응급환자 구조에 참여한 선의의 일반인과 의료진이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의해 얼마나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 법은 성경에서 강도를 만다 거의 죽게 된 유대인을 같은 민족의 유대인 제사장이나 레위족 사람들은 못 본 채 지나갔지만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구해 준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타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거나 보게 되었을 때 곤경에 처한 타인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도덕적 · 윤리적인 의무를 법제화한 것이다. 이런 응급상황은 비행기나 공공시설, 그리고 거리와 같이 의료기관 밖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이 외에도 의료인이 근무하지 않는 다른 의료기관이나 같은 의료기관 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착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알려진 법조항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일명 응급의료법) 제5조의 2로 이 법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에 한 응급처치인 경우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로 되어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위의 면책조항이 너무 성기다는 것이다. 즉 주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살펴보면 ‘업무수행이 아닐 때’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과 함께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라는 조항이다.
우선 ‘업무수행 중이 아닐 때’란 일반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장소’나 ‘시간’을 벗어났을 때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의료인 당직은 아니지만 자신이 근무하는 의료기관의 의국이나 병원의 특정장소에서 공부나 기타 잡일을 하고 있을 때 병동에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의료행위에 참여하는 경우 이 상황은 ‘업무수행 중’에 해당하는지 애매하다. 또한 위의 사례와 같이 비록 근무시간이지만 자신이 근무하고 있지 않은 타 의료기관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타 의료기관에서 응급의료행위를 시행한 경우에도 ‘업무수행 중’으로 봐야 할지 아닌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적용을 확대하면서 그 요건으로 ‘그 의사가 해당 의료기관에 고용되어 있지 않을 것’과 ‘제공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것’을 제시하였다.
이와 함께 면책조항의 예외조항으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내용이다. 같은 의료인이라고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장비나 인력에 따라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는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는데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장비나 다른 의료보조인력의 도움이 없이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은 치료판단에 있어서 오판을 할 개연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법원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유무를 판단할 때 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선의로 응급상황에 참여한 의료진의 경우 억울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라는 조항이다. 이는 응급처치를 받은 환자가 사망을 하는 경우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더라도 그 행위자는 의료행위에 대한 민사책임을 지며, 동시에 형사법적인 책임을 지는데 다만 형사법적 책임에 한하여 경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의료인이 자신이 업무수행을 하지 않는 공간인 비행기나 다른 곳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비록 응급처치를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와 경제적인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의로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하자. 이 때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환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항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응급상황은 환자가 사망에 이를 정도 즉, 여러 이유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선의로 자발적으로 응급구조행위에 참여하였더라도 환자가 사망하였다면 응급구조행위에 참여한 의료인은 감경된 형사처벌과 함께 환자가족의 손해배상소송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대가없이 자발적으로 응급구조행위에 참여한 것 치고는 대가가 혹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의료인이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환자가 죽지 않을 정도의 상태라면 응급의료나 응급처치에 참여하지만 만약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참가하지 않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즉. 응급처치 활성화에 가장 문제점으로 인식되어 왔던 대표적인 이유가 법적 책임발생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현재의 법령은 이를 전혀 해소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의사는 혹시 비행기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끼어들지 않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면 우선 술을 마신다고 한다. 참으로 웃픈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지에 대하여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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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