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간암은 불치병일까?

[한광협의 간보는 사람의 간편한 세상]

[사진=Emily-frost / shutterstock]

올해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79.7세, 여성 85.7세이며 1970년의 기대수명과 비교하면 약 20년이 늘어나 ‘100세 시대’를 바라보게 됐다.

국내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은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고, 심장이나 폐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다음이다. 특히 40대 이후부터는 암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으며 30대는 위암, 40대와 50대는 간암, 60대 이상은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다.

간암은 사회 활동이 많은 중년의 남성에서 특히 많고, 폐암과 함께 예후가 불량한 암으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암이 진행될 때까지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다가 병세가 깊어진 다음에 병원에 오기 때문이다. 간암이 진행돼 배가 아프거나 덩어리가 잡힌 경우, 또는 황달이나 복수 등의 간기능이 악화된 증상이 나타나서 병원에 오면 대부분 치료시기가 늦고 완치가 어렵다.

다행히 간암은 발병 원인이 비교적 잘 밝혀져 있다. 간암 발생위험이 높은 위험군은 △만성 B형 또는 C형 바이러스성 간염을 앓거나 △습관성 음주로 간이 굳어진 경우(간경변) △여러 이유로 간에 오랫동안 염증이 생겨 간이 굳어진 경우(간경변) △간암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다. 간암 위험군은 1년에 2번 초음파검사와 피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2/3는 조기 진단이 가능하고, 이때는 수술이나 고주파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위험군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 간염 관리와 건전한 음주습관을 지키면 간암 예방이 가능하다. 실제로 국내 간암 발생은 최근 완만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바이러스성 간염에 의한 간암 위험은 예방 접종과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치료 덕에 점차 줄어 드는 추세다.

 

인구 10만 명 당 암 사망률 추이(1983-2018) [자료=통계청]

필자는 아직도 간암이 진행되어 치료가 어렵다고 여기고, 혹시나 하여 본인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왜 예방과 조기진단의 기회를 잡지 못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미리 절망하지 말자. 치료가 어려운 경우와 불가능한 것은 다르다. 진행된 간암이라고 다 불치병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불리한 간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준다. 조선 수군은 엄청난 수의 적 앞에서 객관적으로 불리한 전투 상황에서도 충무공의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는 긍정적 자신감과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단호한 임전태세를 요구하는 강력한 리더십, 이를 믿고 따르는 부하들이 한 팀이 돼 승리했다.

간암이 진행되어도 우리에게는 여러 치료법들이 있고 암과의 힘든 싸움을 주치의를 믿고 죽기 살기로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Never, Never Give up) 주치의를 믿고 암흑과 같은 투병의 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터널의 끝을 나갈 수 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으며,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절대적 믿음이 필요하다.
좋은 소식은 간암이 진행되어 수술이 어려운 환자를 위한 먹는 표적항암제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고, 지난해부터 이 약이 듣지 않는 환자에 대한 2차 치료제와 기존 항암제보다 잘 치료가 되는 신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올해부터는 보험도 적용돼 비용부담이 줄었다는 것이다.

또한 간암에서 면역항암제의 임상연구가 진행돼 이미 2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병합 치료 연구가 진행돼 최근 2가지 약제를 사용하여 치료 성과가 더 좋았다는 발표가 있었다. 기존의 치료제보다 치료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은 낮추는 후속 연구들이 진행 중이어서 기대가 크다.

필자는 최근 방사선종양학 교수인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간암 분야의 전세계적 전문가를 초청해 열린 학회에 참석해 여러 고무적인 연구결과들을 들었다. 중국의 가장 저명한 원로 외과 교수의 특별 강연이 인상적이었는데 90세의 탕자오유 교수(푸단대, 상하이제1의대)는 ‘간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강연에서 “간암 치료는 예방과 조기진단이 중요하고 단일 치료보다 협력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하이 간암 학회에서 중국 푸단대 의대 탕자오유 교수의 강연 [사진=한광협 제공]
필자의 강연 제목도 ‘진행성 간암의 다학제팀 치료법’이었다. 필자는 진행성 간암 환자가 대부분이던 20여 년 전에 관련된 모든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서 합심해서 치료해야만 승산이 있음을 깨닫고 방사선종양학 전문가인 아내와 함께 간암치료에 방사선치료와 국소적 항암 병용 치료법을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아울러 1995년부터 외과, 방사선중재학 전문가들이 포함된 여러 전문가들로 연합팀을 구성하여 간암전문클리닉을 시작하여 ‘침묵의 살인자’와 싸워 오면서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해왔다.

이제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다학제 진료가 기본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간암 치료생존율과 완치율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연간 1만명 정도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신약들과 신치료법이 지금까지 불치로 여겨진 환자에게도 완치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지만 아직도 조기진단과 예방이 최선이다.

대한간암학회는 2월 2일을 ‘간암의 날’로 정하여 “연 2회 2가지 검사로 조기 진단에 힘쓰자”고 캠페인을 하고 있고, 7월 28일 세계 간염의 날과 10월 20일 간의 날에는 간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예방에 힘쓰자고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30년 넘게 간(肝)보는 의사로서 간(肝)편(便)한 세상을 꿈꾸어 왔으며, 앞으로 침묵의 살인자로부터 우리의 삶이 편안하기를 기원한다. 그 전에 침묵의 살인자 앞에 선 환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의사를 믿고, 의료진과 함께 죽을 각오로 그 살인자와 싸운다면, 간암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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