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까닭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362호 (2019-11-11일자)
도스토옙스키가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까닭
주말 가을비에 늦가을 간들간들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거리마다 이들 낙엽이 몸을 뒤척이며 발길에 채이고 있습니다. 아마 대도시의 거리에는 은행 고엽이 가장 많을 겁니다. 출근길 길바닥에 번지고 있던 은행나무 잎, 무심코 밟고 오지 않으셨는지요?
은행나무는 역사가 2억년 이상인 ‘살아있는 화석’이며 활엽수처럼 생긴 침엽수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기도 합니다. 독특한 고린내 때문에 가로수 목록에서 은행을 없애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은행은 뛰어난 공기정화 효과 때문에 쉬 없앨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니 공해가 심할 때 진가가 드러납니다. 시익 곽재구는 ‘은행나무’에서 가을의 은행을 노래했습니다.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이 시의 ‘늙은 러시아 문호’가 바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죠? 1821년 오늘은 ‘넋의 리얼리즘’을 완성한 러시아의 문호가 태어난 날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제2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845년 24세 때 《가난한 사람들》로 러시아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지만, 4년 뒤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됩니다. 그는 기껏해야 유배 정도를 생각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묘노프스키 광장에서 사형 언도를 받습니다. 사행 집행 전 속으로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만약 신의 가호가 있어 살수가 있다면 1초라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마음의 기도를 되풀이하다가 총살 직전 기적과 같이 황제의 감형을 받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4년 동안 살을 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시베리아에서 5㎏의 쇠고랑을 차고 유배생활을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감이 떠오르면 머릿속으로 소설을 쓴 뒤 모조리 외웠습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라고 자문하면서 살아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현자 루시우스 세네카는 “사람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지요. 도스토옙스키가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일이, 아니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도스토옙스키 밑줄 긋기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오로지 이를 통해서, 자존감 만이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은 전혀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들을 지속하는 것이다.
○괴로움이야말로 인생이다.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무엇으로써 또한 만족을 얻을 것인가?
○만약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인간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도록 악마를 만들었을 것이다.
○불행은 전염병이다. 불행한 사람과 병자는 따로 떨어져서 살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그 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하여.
○인간의 그 강한 생명력! 인간은 어떠한 것에도 곧 익숙해지는 동물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최상의 정의다.
○거침없이 남을 비난하기 전, 먼저 자신을 살리는 법부터 찾아야 한다.
○돈이 있어도 이상(理想)이 없는 사람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많은 불행은, 난처한 일과 말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일 때문에 생긴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그것을 자각한 사람은 곧 행복해진다. 한순간에.
오늘의 음악
시간이 그야말로 쏜살같습니다. 지난해 음악 ‘고엽’을 소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에는 스탄 겟츠의 색소폰 연주와 에릭 클랩톤의 노래로 각각 준비했습니다. 같은 곡이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한 번 느껴보시지요. 고엽의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