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실 연세대 교수, 세계 권위 BFA 여성 첫 수상
연세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성진실 교수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BFA(Blue Faery Award)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BFA는 고교 때 간암으로 숨진 아드리엔느 윌슨을 기리기 위해 가족의 기탁금으로 설립돼 간암 연구, 교육, 홍보를 진행하는 '블루 페어리(Blue Faery)' 재단이 수여하는 세계적 권위의 상. 매년 간암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세계 각국의 의료인 가운데 '최고'에게 수상한다. 성진실 교수는 BFA 첫 여성 수상자이자, 첫 방사선종양학 전문의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간암 분야의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블루 페어리는 다른 상들과는 달리 어떤 하나의 연구를 보기보다는 이 분야에서의 평생 업적을 봅니다. 특히 여성이 홀대 되는 분위기 속에서 간암학회 회장을 지내며 간암에 대해 열심히 알린 것을 보고 상을 준 것 같습니다."
BFA 측은 선정 이유에 대해 "성진실 교수는 간암 방사선 치료 분야의 개척자"라며 "방사선종양학과 여성이라는 '더블 마이너리티'를 극복해 특유의 열정으로 간암 연구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며 탁월한 업적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성진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간암 방사선 치료를 처음 시작한 주인공이며,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의 선두그룹이다. 간암 치료의 동반자인 남편 한광협 교수(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와 함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결합한 '항암제 방사선 복합치료(CCRT)'를 개발하며 간암을 완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 교수는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한간암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올해는 간암 분야 최대 규모의 학회인 아시아태평양간암학회(APPLE) 사무총장에 이어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대한간암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간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의 해답은 대국민 홍보에 있다고 생각해 국내 최초로 '간암의 날'을 제정하기도 했다. 현재 아시아 임상암학회 상임이사, 아시아 방사선 연구학회 부회장, 국제 원자력기구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쉽지 않았던 길... 후배들에게 롤 모델로 남고 싶다"
BFA가 언급했듯이 방사선종양학과는 아직 ‘비주류’ 과다. 국내에서도 올해 전공의 전기모집에서 절반을 채 확보하지 못했다. 취업이 잘 되거나, 개원을 하는 전공은 아니기 때문에 자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더욱이 성 교수가 의과대학을 졸업하던 1983년에는 방사선종양학과는 신생과였다. 성 교수는 당시 선택이 “모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암 치료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방사선종양학과는 지식을 베이스로 계획을 짜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걸 제가 좋아했거든요. 외과에서 여자 졸업생을 잘 안 뽑기도 했고요."
성 교수의 의대 졸업 당시만 해도, 여자 졸업생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달랐다. 전자는 주로 피부과나 안과였고, 후자는 소아과나 산부인과였다. 성 교수 역시 처음에는 피부과를 고려했지만,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은사인 김귀언 교수를 만났다. 연세암센터 원장을 역임한 김귀언 교수는 국내 최고의 방사선 암치료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었다.
"방사선종양학과는 여성을 뽑지 않는다든지 그런 차별이 없었어요. 스승이신 김귀언 교수님의 영향도 큽니다. 교수님께서는 학문을 할 때,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어쩌면 방사선 치료에서 치료 기술만 연마할 수도 있었겠지만 교수님께선 다면적인 접근을 강조하셨어요. 예를 들어, 내과에서 환자를 보낼 때, 내과 의사만큼 알아야 소통이 잘 되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잘 따라온 것 같습니다."
성 교수는 앞으로 의료 사회에 '여성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계에서 여성 의사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임원이나 각종 위원회, 대의원회 등에서 여성의 비중은 아직도 너무나 적다. 전국 41개 의대의 여학생 비중은 37%이지만, 지난해 기준 여성 교수는 22%에 불과하다.
"학계에서는 남녀 차별이 없다고 생각해요. 논문으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언가 바꾸려면 학문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리가 주어져야 바꿀 수 있습니다. 제가 의대에 다닐 때는 여학생들이 140명 중 10명 정도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30~40%는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전공을 선택할 때라든지, 그런 것들이요. 실제 의료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유리천장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후배들이 그런 것을 많이 깨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은 롤 모델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