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재판관 의견 어떻게 갈렸나
오늘(11일) 헌법재판소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자기낙태죄)와 낙태시술을 집도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제270조(의사낙태죄) 등에 대한 위헌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2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쟁점은 크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간의 대립이다.
1. 헌법불합치 : "여성의 자기결정권 과도하게 제한"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 서기선,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은 여성의 현행법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았다.
헌법 제10조 1문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한다. 자기결정권에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상태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은 자기결정권은 인간과 국가의 관계가 남녀 구별 없이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며, 특히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 출산을 할 수 있는데 이에 관한 결정은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헌법불합치 의견 측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낙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자기낙태죄 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자기낙태죄 조항에 따른 처벌로 인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제한되는 정도는 매우 크다고 봤다.
2. 위헌 : "임신 초기 사유 불문, 낙태 가능해야"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 역시 자기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에 더해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기간 이후 약 14주까지)에는 사유를 불문하고 낙태가 가능해야 하며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위헌 의견 측은 임신한 여성의 임신 유지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여성의 인격권의 핵심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봤다. 이어 이를 침해하는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이를 전제로한 의사낙태죄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임신 제1삼분기를 지나면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아 여부를 알 수 있어 이 시기 이후의 낙태는 선별적 낙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제1삼분기에서의 낙태마저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완전한 박탈이라는 것.
위헌 의견 측은 "낙태를 금지하고 이에 대해 형벌적 제제를 부과하는 방법은 태아의 생명 보호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차라리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사회복지차원에서의 국가적 지원, 출산과 육아에 장애가 되는 각종 제도 등을 개선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고 실효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3. 합헌 : "태아의 생명권 중대한 공익"
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헌법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를 근거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합헌 의견 측은 태아는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지만 세포의 성장과 분열은 모두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일정한 시기부터는 고통을 느낄 수 있어 태아는 모체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생명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낙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라고 보았다.
낙태 허용이 성차별적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 또한 제기됐다. 합헌 의견 측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생명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일 뿐이며, 임신한 여성과 그 가족이 특정한 성별의 아이를 선호하여 낙태할 수 있다면 이는 명백한 성차별 효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행법이 낙태 근절에 큰 기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조항이 없어질 경우 발생할지도 모르는 인명경지풍조 등을 고려하면 자기낙태죄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