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피살 임세원 교수 추모 ‘물결’
“설마 임세원 교수님은 아니시겠죠? 예전에 제가 한참 힘들었을 때 저를 보듬어 주시던 주치의 선생님이에요. 사실이라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구랍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에게 살해됐다는 급보가 쏟아지자 검색포털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 누리꾼이 올린 글이다. 허나, 우려가 사실이 됐다.
온라인에서는 임세원 교수(47)를 추모하는 흐름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사회관계서비스(SNS)에선 임 교수를 추모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청와대 신문고에선 의료 안전성을 위한 청원이 벌어지고 있다.
고인이 된 임 교수는 1996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안암병원 임상조교수를 거쳐 2006년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겼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국민 의사’로 불리는 이시형 박사와 ‘소아정신과 명의’ 노경선 교수 등이 기틀을 마련했고 오강섭, 신영섭, 신동원 교수 등 정신건강의학과 명의들이 포진한 곳이다.
임 교수는 성실한 의사, 의학자로서 정평이 나있어, 갑작스런 변고에 동료 의사들이 충격에 빠졌다. 고인은 우울병, 조울병, 불안장애 등 환자를 보면서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으로서 직장인들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또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 100여 편을 발표했으며 대한불안의학회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맡아서 적극적으로 학술활동을 해왔다.
임 교수는 특히 자살 예방에 힘써온 의사로 유명하다. 고인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한국형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해 전국에 보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임 교수는 또 2016년 자신의 아픔을 바탕으로 자살예방을 위한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허리의 만성통증을 겪으면서 우울증상을 겪었고 자살 직전까지 갔다고 고백했다. 만성통증을 이기기 위해 동료 의사의 권고에 따라 절대 안정을 취하기도 하고 수술도 받았다. 의사이면서도 민간요법을 찾기도 했다. 무신론자였지만 통증 때문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열심히 기도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책에서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10년 이상이 지난 뒤에야 자신이 틀리고 환자들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많은 환자들을 만나 임상경험이 쌓여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우울증으로 상당 기간 고통을 받고 나서였다”라고 썼다. 스스로 뼛속 깊이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살을 예방하는 책을 통해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악전고투했지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전문지 ‘정신의학신문’에서는 이렇게 추모했다.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일 줄은 몰랐습니다. 새해를 함께 맞이하지 못한 우리의 동료, 아둔한 손을 탓하며 흉부외과의 꿈을 접었고 정신과 전공의 때 자살징조를 알아채지 못해 자신의 머리가 아둔하다며 자책했던 동료,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을 구해오셨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당신의 의지는 우리가 기억할 테니 이제 편히 쉬세요.”